‘(외부) 논문지도교수’에 얽힌 이슈들

‘(외부)논문지도교수’에 얽힌 이슈들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

1. 몇해 전 귀국해 대학원 수업을 하면서 당황스런 이야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요즘 대학원 입시 과외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단기간에 대학원 시험 대비 요령을 가르쳐 주는 거죠. 이런 과외를 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니는 원생들도 있어요. 교수님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데 당연히 좋아하시지 않는 눈치더라고요.”

대학생들이 고등학생 과외하듯 대학원생이 대학생 대상 과외를 하는 게 무슨 문제냐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런 현상이 달갑진 않았습니다. 말릴 수는 없겠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 몇 해 동안 대학원에서 수업을 했고, 대여섯 명의 학생들은 제게 논문 지도교수가 될 수 있느냐고 질문을 해왔습니다.

현재 시스템에서 그럴 수는 없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비정규직 시간강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이죠.

3. 이제 본격적으로 아래 첨부한 광고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종종 접했던 한 논문작성 컨설팅 업체가 “논문지도교수 채용중”이라는 광고를 냈습니다. 이에 대해 몇몇 연구자들께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내셨죠. 개인적 친분은 없지만 평소 쓰시는 글을 통해 보건대 비판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의견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면서 제 경험을 덧붙이려고 합니다.

4. 사실 논문작성시 연구문제 탐색에서 자료조사, 분석, 결과 도출, 논의 등을 저자가 직접 담당한다면 다양한 조언을 구하는 건 자연스럽고 권장할만한 일입니다. 어디까지 도움을 구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 타인의 개입을 인정할 것인가는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학자로서의 양심과 연구윤리를 훼손하지 않는 한 최대한 많은 도움을 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제가 만나온 대부분의 대학원생들이 지도교수로부터 충분한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방치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기에 다소간의 왜곡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대학원생 상당수가 논문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해 충분한 지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5. 이런 상황 맞은 편에는 박사학위를 받고도 생존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를 받는 지식노동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를 ‘학력인플레’라고 부르든 ‘최악의 직업 선택’이라고 부르든, ‘시간강사 처우 문제’라고 부르든, ‘대학의 비정규직 착취’라고 부르든 간에 (1)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정규직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고 (2) 비정규직 노동의 임금은 실로 보잘것 없으며 (3) 이들의 처우가 단기간에 좋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누가 학위를 따라고 했나. 사서 고생이지. 힘든 건 알겠다만 다 네가 선택했으니 네 책임이야.”라며 문제를 개개인에게 넘겨버릴 수도 있을 겁니다. 부끄럽지만 저 스스로도 이런 논리로 저를 괴롭힐 때가 있으니, 이 과정을 겪지 않고 있는 분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6. 하지만 저는 이 현상을 좀더 거시적인 틀에서 전문성의 탈각과 연결시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개인의 진로 선택이나 적성,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로서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지식과 경험의 누수 문제로 보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왜곡은 필연적으로 탈전문화를 수반합니다. 연구자들도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기에 생존의 문제에 봉착하면 전문분야와 관련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죠.

이 와중에 연구자로서의 전문성은 서서히 녹슬게 됩니다. 짧게는 4년 여, 길게는 8-10년 동안 쌓아온 지식과 내공이 허공에 서서히 흩어집니다.

그렇게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 없지요.

대학에 재직중인 교수들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집니다. 정량적 실적평가가 생존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은 ‘점수를 딸 수 있는 일’에 집중됩니다. 교육과 연구 양 축에서 교육은 무시되기 일쑤고, 연구 영역 내에서도 평가항목에 기재할 수 있는 실적 쌓기에 시간과 에너지가 집중됩니다. 이런 면에서 21세기의 대학이 19세기 공장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7. 저는 앞서 기술한 일련의 요인들—불충분한 논문지도, 고학력 비정규직 문제, 전문성의 누수, 정량적 산출물에 대한 대학의 집착—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논문 컨설팅, 나아가 ‘외부논문지도’ 시장이 자연스럽게 부상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다고 해서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구조적 요인들이 축적되면서 시장의 대응이 공식화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논문컨설팅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물꼬가 트인 만큼 더욱 공세적인 마케팅이 예상됩니다.

8. 소결론은 이렇습니다. ‘논문지도교수’ 구인광고는 분명 불편하지만, 단지 ‘저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라는 비판으로 이 불편함이 해소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광고 하나에 중층적인 모순이 담겨 있기에 논문작성에 있어서의 교수와 대학원생의 역할, 비정규직 학술지식노동자 시장, 대학평가 기준, 성과중심의 학문적 풍토, 연구자의 정체성과 학위논문의 의미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성찰과 논쟁이 필요합니다.

붙이는 말:

많은 분들께서 제가 특강 및 정규 수업을 통해 <영어논문 작성법>을 강의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영어논문 작성’은 논문지도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일이긴 합니다만, 대학과 대학원에서 충분한 영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히 큽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쇼팽 음악 틀어주고, 쇼팽 악보를 보여줬으니, 이젠 네가 연주해 봐”라는 식의 요구를 받기도 하죠. (아놔, 모든 학생이 조성진은 아니잖아요?)

학생들이 ‘구르면서 배워야 할 것들’도 있을 겁니다. 연구자가 갖추어야 할 윤리나 전문성의 특정 측면은 명시적으로 가르쳐 줄 수 없구요. 하지만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나도, 네 선배들도 다 그렇게 배웠어’라고 말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교육자들이 할 일은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빨리 배우게 하고, 그것을 통해 더 의미있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지, 선임자들이 당한 고통을 그대로 느끼도록 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닥 새롭지도 않은 생각을 정리한다고 오전이 다 가버렸습니다. 이제 슬슬 점심 먹으러 가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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