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붙이

Posted by on Jan 18, 2017 in 단상, 링크,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 뿐이다.” (장그래)

어제 동료 선생님 한분과 저녁을 먹다가 <미생>의 이 대사가 떠올랐다. 아무리 발버둥쳐 봐도 기약할 것 하나 없는 시대. 그렇게 망가진, 슬픔과 분노의 한국사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말하는 순간 거짓말장이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

사람들은 <미생>에서 장그래의 고군분투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로기사의 꿈을 버린, ‘학벌 딸리는’, 빽도 없고 꼼수도 부릴지 모르는, 목욕탕 바닥이 닳도록 밀고 냉동고에서 냉동 직전까지 우직하게 일하던 ‘미생’. 그가 극의 중심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오래 남아있는 건 회사를 찾아와 끈질기게 돈을 요구하던 퇴역군인 아버지를 맞는 안영이의 모습이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아무 관계 없는, 끊어내지도 멀리하지도 못할 인연. 세상에서 가장 붙어 있기 싫은 피붙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이 가장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는, 애증(愛憎)이 아니라 애증(哀憎)의 관계. 그렇게 슬퍼하고 증오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를. 가리워진 길을 더듬으며 함께 걸을 수 있는 좋은 친구 하나쯤은 곁에 둘 수 있기를.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