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텍스트를 지배하는 자가 법을 지배한다

Posted by on Jan 20,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법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의 공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법도 하나의 언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흔히들 텍스트를 언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음성 텍스트) 혹은 책에 쓰여있는 바(문자 텍스트)를 언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텍스트는 언어의 물적 존재양식일 뿐 언어 자체는 아니다. 말글이 아니라면 무엇이 언어라는 말인가?

단순화를 무릅쓰고 이야기하자면 언어는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와 컨텍스트의 결합이다. 언어는 발화(utterance) 혹은 문장(sentence)이 아니라 이들이 특정 맥락에서 획득하는 의미, 나아가 이에 수반되는 효과다. 때로 권력은 텍스트 자체를 바꾸지 못할지언정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만나는 방식을 형성한다. 때로는 ‘진보적’ 텍스트를 만들어 내면서도 컨텍스트를 바꿔 말의 힘을 무력화한다. 말과 상황의 ‘관습적인’ 결합방식을 ‘자연스럽게’ 체화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실현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하는지에 따라 텍스트의 내용과 효과가 달라진다. “늙었네”라는 똑같은 말을 내가 어머니께 할 때와 어머니가 나에게 할 때의 의미는 달라지듯 말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정치인의 입에서 나올 때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참전용사의 입에서 나올 때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가공할 힘을 만난다. 민주공화국에서 법은 단일한 텍스트다. 해석의 다툼이 있는 법조문이 분명 존재하지만 텍스트로서 법은 하나로 존재한다. 이 텍스트는 일련의 의도, 사건, 파장 등과 결합해 그 의미와 효력을 실현한다. 이 과정에 다양한 사람들이 개입하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법의 의미가 드러난다. 이때 컨텍스트를 지배하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법효력의 힘과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시민들의 힘으로 바뀌어온 법이라는 언어. 하지만 이 언어의 힘을 결정하는 것은 텍스트가 해석되고 적용되는 컨텍스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들이다. 한국사회의 정점에는 삼성이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과신은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텍스트의 변화는 중요하지만, 최종심급은 텍스트와 만나는 컨텍스트의 성격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컨텍스트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그래서 “법에 의한 지배”는 언제나 의심의 대상이다. 법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권력이 법을 통해서 세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지배양식은 텍스트에서 오롯이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기록될 수 없는 맥락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이 법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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