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정하기, 인간 지우기 — ‘스크립트 문답’에 대한 깊은 우려

‘정해진 질문과 답변’이라는 말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습니다. 답을 알고 하는 질문이 무슨 질문이며, 질문을 미리 알아버린 답이 어떻게 답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답을 정해 놓고 질문을 하라는 요구는 매끄러운 진행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1) 자신의 삶에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거나 (2) 정치가로서 정책과 비전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3) ‘귀찮은’ 질문들을 피해가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정치적 행태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합니다. 바로 내 앞에 있는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질문과 답을 정해놓고 ‘대화’를 진행함은 다음과 같은 생각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너의 질문이나 호기심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내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너의 목소리를 빌리겠다, 이런 자리에 캐스팅 되었다는 사실로 만족해라, 어떤 비판이나 호기심의 언어도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네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빛나야 할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니까.’

결국 질문과 답을 정한다는 것은 지금 내 앞의 인간을 지우는 행위입니다. 마주하는 얼굴마저 지우려는 사람이 만나보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질문을 정하는 일은 인간을 지우는 일입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뼈속 깊이 체화한 사람만이 질문을 정할 수 있습니다. ‘짜고 치는 대화’를 그 어떤 상황보다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v.media.daum.net/v/2017012100030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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