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

Posted by on Jan 24, 2017 in 강의노트, 일상 | No Comments

얼마 전 한 지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년 만에 만났지만 오랜 세월 알고 지낸 터라 어색함은 없었다. 시간 참 빠르네요, 예전 학교 다닐 때 ‘아무 생각 없이살았는데 말이지, 좌충우돌. 이제 초점이 안맞아서 애기가 ‘아빠 이거 봐’하고 들이밀면 슬쩍 밀치면서 봐요, 나도 순간 ‘초점 거리가 이리 밀렸나’하면서 흠칫 놀라곤 해, 나이드는 건 다 비슷하네, 그래도 아기들 키우는 거 보면 정말 힘들 거 같아, 그렇지 뭐.

잡다하게 시작된 대화는 희망 없는 한국사회와 끝나지 않을 먹고사니즘 이야기로 넘어갔고 예상된 운명처럼 “우리가 왜 이걸(영어교육) 하고 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쳤다. 학교에 자리를 잡고 오랜 시간 논문을 발표해 온 그도, 시간강사로 살아가며 가르치는 데 좀더 애쓰고 있는 나도 이 질문을 똑같이 붙잡고 있었던 거다.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는지…”라는 그의 말에 조심스레 답을 하기 시작했다.

“가르치는 건 좋아. 학생들 만나면 힘을 많이 얻지. 솔직히 맘에 안드는 애들도 있지만 ㅎㅎ 근데 우리가 공부한 걸 결국 ‘영어교육과’라는 데서 풀게 되는데, 이 공간이 점점 본질과는 멀어지는 거 아닌가? ‘본질’이라고 하니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응용언어학이든 인지언어학이든, 비판이론이든,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못된다는 거지.

내 능력이 안되는 걸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학생들이나 과가 원하는 게 정해져 있고, 교수든 강사든 그 틀에 맞춰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까. 진짜 중심에 가 닿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이걸 생각하면 답답하지. 논문을 쓰고 발표를 하고 그래도 이게 결국 효율성의 문제로 가버리니까. 게다가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전문가들은 저 밖에 있고. 영어교육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이 많으니까. 그런 무력감도 있는 거 같아. 게다가 신경망 번역까지. ㅎㅎㅎㅎㅎ”

그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그리고 가슴을 두세 번 두드리며 말했다.

“맞아, 진짜 해야 되고 하고 싶은 이야기… 그게 안되지.”
“안되지…”

시간표와 체력 등을 고려해 한두 번 거절한 학교에서는 다시 강의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다. 다행히 새로운 곳에서 연락이 왔고 완전히 새로운 수업들을 짜고 있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질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학생들이 “내가 왜 이걸 듣고 있지?”라는 질문을 최대한 적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

강의는 거절하는 게 아니고 회의는 빨리 봉합하는 게 좋다. 추운 날도 곧 지나갈 것이고, 2월에는 처음으로 여는 ‘방학특강’에서 새로운 분들을 만난다. 시대는 개떡같지만 만남에 대한 설렘은 아직 죽지 않았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