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이후 글쓰기 잡감

<논문 이후 글쓰기 잡감>

학술 리터러시와 관련된 논문을 영어로 썼다. 리터러시 관련 논문이라지만 잘 쓴 논문은 아니다. 힘들게 완성했고,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지도교수는 나에게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이게 앞으로의 네 생애에서 가장 못쓴 글이 될 거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간 헉, 했지만 이내 슬픔과 쾌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누가 뭐라 해도 제일 좋은 논문은 끝낸 논문이니까. (지금 돌아보니 지도교수 말이 맞다. 지금이라면 그때보단 잘 쓸거 같다. 하지만 절대 다시 쓰고 싶진 않다.)

논문을 완성하고 나의 우리말 글쓰기를 돌아보았다. 간간이 써내던 쪽글 대부분은 가볍고 수명이 짧은 잡글이었다. 소리내어 읽었을 때 조차 호흡과 리듬이 살아나지 않았다. ‘리터러시 연구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려니 창피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피아노 잘 못치는 피아노 선생이 된 기분이었달까. 바하를 가르치기 위해 굴드같은 연주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이엘) 하(권) 수준은 아니어야 할테니.

불현듯, 정말 불현듯 우리말이 더 큰 문제라 느꼈다. 영어 따위 남의 나라 말이잖아. 그래서 우리말로 더 자주 쓰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일상을 놓치지 않으려 어머니와의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인지언어학에서 교육적 적용이 가능한 내용들에 주목하여 <영어교사를 위한 인지언어학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분량이 조금씩 쌓여갔다.

하지만 업그레이드 되었어도 쪽글은 여전히 쪽글이었다. 긴 호흡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주변을 바꿔가야 한다. 누군가 말했듯 산을 옮기려면 팔뚝 근육부터 키워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자주, 너무 간단히 실패했다. 좌절은 현재완료 진행형이다.

몇해 전부터 영어도 우리말도 어정쩡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게 좀 심해서 주변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는 상황에서 슬피 우는’ 친구들에게서 위안을 얻는 것은 나쁜 일일까?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가르침의 적극적인 실천일까?

책은 물론 페북만 봐도 글 잘쓰는 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질투의 화신이 되어본 적은 없는 듯하다. 무엇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향. 나의 명백한 한계다. 이걸 오롯이 받아들이는 삶도 나쁘지 않다고 믿어보련다. 오늘도 잡설 하나를 또 뱉어내며 하루를 접는다. 너무 큰 일을 접는 일은 없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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