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정치인

Posted by on Feb 7,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수업자료 | No Comments

“4차 산업혁명”은 학문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지만 다분히 선동적 효과가 있어 곳곳에 차용된다. 사실 우린 알고 있다. 실체 없이 이리 저리 출몰하는 건 유령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런데 대다수 유권자들 또한 ‘4차 산업혁명’을 비판적으로 이해할까? 그렇지 않다면 정치인이 ‘4차’와 ‘혁명’이 가져오는 수사적 효과를 무시할 수 있을까? 혹시 용어의 애매함 자체가 여러 정치세력에게 큰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모 후보의 용어 선택을 지켜보며 정치인이 개념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전문가 집단의 논의에서 탄생한 개념이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올 때, 원개념의 깊이와 복잡도를 그대로 유지할 방도는 없다. 하지만 이를 전략적으로 소비하는 주체가 해당 개념의 껍데기만을 취하는지, 본질을 발전시키려 하는지, 민주적 소통에 힘쓰는지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너무 자주 ‘용어의 배반’을 목격해 왔다. ‘창조경제’의 ‘창조’는 소수의 특권과 재산의 창조였다. ‘녹색성장’의 변신은 뼈아픈 배반이라기 보다는 저질 코미디에 가까웠다.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 설명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마구 갖다 붙이니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개념정치인’이라는 말을 종종 접한다. 상식적이며 정치적 대의명분에 충실한 정치인을 이르는 말이다. 시민들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 정치인’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과학기술적 개념을 마구 갖다붙이는 우를 범하지 않고, 본래의 개념들을 실천적으로 재구성하며, 차근차근 풀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정치인을 말한다.

정치력이 사람을 모아 배치하는 능력을 넘어 개념을 모으고 소통하는 능력으로 정의될 수 있길 바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뭐하는가. 개념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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