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육의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쪽글 두 개

무식하면 용감하다. 12년 전 직장생활 중 석사과정을 돌아보며 쓴 아래 두 쪽글에도 그런 무모함이 배어나온다. 삐뚤빼뚤 어줍잖은 논리를 겨우 겨우 엮은 글. 하지만 여전히 쓰린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영어교육은 인간의 노력으로 재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힘으로 해체당할 운명을 맞을 지도 모른다. 이제 ‘세대’와 같은 커다란 말 보다는 옹기종기 모여 함께 일할 수 있는 작은 손들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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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학 4세대를 말한다.

더미 Inchull Jang 의 논의에 대한 답글

영어교육과에서 새로운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제들이 가이아를 비롯한 이런 저런 사람들에 의해서 논의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1. 현장중심 리서치 – action research라고 불리는 연구방법론을 넘어서 교사집단과 연구자집단의 관계설정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 교육 전반에 있어서 현장과 학계가 유리되어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모색. 현장과 이론의 분리를 해소하기.

2. 사회과학적/인문학적 연구방법론 – 교육학, 심리학, 언어학의 세례를 받은 영어교육을 좀더 거시적인 방법에서 보려는 시도.

3. 영어교육학의 사회적 책무 – 연구와 집필 활동이 한국 영어교육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반영될 수 있는가의 문제. 결국 사회적 효용성의 문제들. 이와 관련해서는 영어교육 전문가들이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포지셔닝하는가의 문제가 대두됨.

4. 서구 중심의 이론 경향 극복 – 한국에서, 한국인을 데이터로 한, 한국적 상황에 맞는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서구중심의 언어교육 이론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 질적 연구방법론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있는 부분.

5. 대중적 담론 공간 형성: 학계와 현장, 학부모들, 사교육계로 나누어져 있는 영어교육 담론 체계를 어떻게 통합해 나갈 것인가. 충돌과 화해의 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런 것들이 주요한 고민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육 분야에서 이런 논의들은 이루어져 왔지만 영어교육 분야에서 고유한 역학관계와 학문적 특성을 고려한 시도는 부족한 듯하다.

앞으로 더미와 함께 좀더 논의해 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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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학 4세대를 말한다 (2)

더미의 글에 따르면 짧디 짧은 한국 영어교육은 다음 세 세대로 구분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흐름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1. 언어학적 기반에서 한국 영어교육의 기초를 정초한 1세대,
2. CLT의 세례를 받아 언어학과 심리학적인 기반 위에서 영어교육 만의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고자했던 2세대.
3. 다양한 영어교육의 성과를 이어받아 보다 세분화되고 비판적인 연구를 하는 3세대.

영어교육 4세대에 대한 논의는 암묵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필자와 같이 아직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거창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우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무식한 사람이 가끔 사회에 도움이 되는 법도 있지 않은가? ㅋㅋ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꾸준히 4세대 영어교육의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전글의 논의와 함께 4세대 영어교육의 특징을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해 보려고 한다.

하나. 데이터 중심 영어교육

영어교육에서의 논의와 연구들은 ‘서양적 틀’을 가지고 ‘한국적 상황’에 대입해 보는 쪽에 무게를 두어왔다. 예를 들어 CLT라는 트렌드가 생겼을 때 “CLT 모델에 대한 연구”라든지 “CLT에 대한 교사들의 태도”라든지 하는 식의 연구다. 다시 말해, 서양에서 제시된 프레임웤을 한국적 상황에 맞춰보고자 하는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 한국의 학습자들이 과연 영어교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영어를 왜 배워야 한다고 느끼고 있는지, 실제 영어교육 시장의 트렌드는 어떤지, 각 출판사와 학원, 교사들이 영어교육에 대해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언어의 4기능별로 어떤 학습법이 통용되고 있는지, 영어학습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시장전략은 무엇인지, 영어교육은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고 있고 각각의 미디어는 어떤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지, 한국에서 영어교재를 개발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영어교육 전문가 직업군 별로 어떤 관점에서 영어교육을 바라보고 있는지, 영어교육에 있어서 유의미한 데이터들은 어떻게 생성, 분배, 소비되고 있는지,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적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또 어떻게 형성되는 것이 바람직한지, 토익과 토플 중심의 평가가 한국 영어교육을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영어마을과 어학연수는 정말 효과가 있는 건지, 한국의 ESL 담론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영어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당사자들간에 정보의 갭은 없는지, 영어 교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학원과 학교, 공교육과 사교육의 양태는 어떠한지…

이 모든 것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한 관찰을 통해서 ‘이론 중심’이 아니라 ‘데이터 중심’의 영어교육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둘. 삶을 가로지르는 영어교육

(삶을 가로지르는 영어교육은 더미의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삶을 가로지르는 영어교육이 가지는 문제의식은 기존의 영어교육의 학문적 성격이 언어학, 교육학, 심리학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이제는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방법론과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언어철학, 비판이론, 미디어 연구, 영어교육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영화학, 커뮤니케이션 이론, 교육공학 등의 성과들이 언어교육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선언적 의미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영어가 특권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었을 때와 모두의 관심이 되었을 때, 영어가 텍스트 중심으로 ‘전달’되었을 때와 멀티미디어 중심으로 ‘학습’될 때, 오프라인에서의 언어교육이 대세였을 때와 웹을 통한 IT적 전달방식을 취하였을 때… 이 모든 변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는 연관 학문과의 소통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밖에 없다.

이들 논의는 ‘영어교육학자의 정체성’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기존의 영어교육학자들이 가진 정체성이 ‘심리학자’, ‘교육학자’, ‘(응용)언어학자’등으로 대변된다면 이제는 좀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오늘 아침 생각나는 영어교육학 4세대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늘어놓아 보았다.

(2005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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