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드리는 글

Posted by on Mar 4,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어머니.

엊그제 지도교수와의 회의 탓에 전화를 부랴부랴 끊고 말았네요.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어둑해진 길을 따라 집에 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다시 만나면 깊은 외로움이 아니라 끊임없이 벅찼던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당신을 다시 만나면 지금 숨가쁜 하루 하루가 아니라, 희망을 키워온 다섯 해에 관해 이야기하겠다고.

하지만 만남의 기쁨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희생하진 않으려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순전한 기쁨으로 맞을 때 더 벅찬 가슴으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요. 일 하나만 삐끗해도 오랜 시간 되씹곤 하는 못난 아들이지만 당신에게 배운 사랑과 인내로 그나마 버틸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_라고 묻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답 없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여전히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당신을 거쳐 온 사랑이 제 안에 자리잡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짧지도 길지도 않은 타지에서의 삶, 사랑의 결단보다 힘든 건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랑이라 멸시하지 않고, 올바른 사랑이라면 주저없이 그것을 끌어안는 일 말입니다. 아아. 어리석은 저는 온전히 사랑을 품지 못합니다. 여전히 대책없이 서툽니다.

새벽기도에서 돌아와 좀더 주무셔야 되는데 잠이 오지 않으신다 했지요.  집에 들어설 때 좁은 통로에 주욱 늘어선 세간살이가 비루함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혼자 잠드시는 시간이 아픔을 반추하는 시간이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TV를 켜놓고 잠든 밤, 치익거리는 노이즈가 잠을 깨운다 해도 서글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몸 누이기도 힘든 저의 작은 방에 뒹구는 졸업 앨범들이 당신의 마음을 회색빛으로 물들이지 않길 바랍니다. 당신은 그 곳에서, 저는 이 곳에서 이 비참하고도 아름다운 삶을 외면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조금 더 가지게 된다 해서 우쭐하지 않고, 조금 덜 가졌다고 해서 우울해하지 않기를. 우리 삶에서의 기적은 기업을 세우고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라 기업 없이 살고 권력을 놓는 것임을 깨달아 가길 원합니다.

주말입니다.
몸맘 모두 쉼을 얻는 토요일 오후 되시길요.

 

2012. 3. 3.
아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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