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수사에 반대한다

Posted by on Mar 10,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러 들어선 화장실. 학생 하나가 침을 튀기며 이야기한다. 이런 탄핵 기준이라면 김대중도 노무현도 다 탄핵 되었어야 한다고. 지난 대통령들과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듣고 있는 학생의 낯빛이 그닥 좋지 않다.

탄핵 직후 대학 캠퍼스에서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큰 소리로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목소리를 높인 그 학생 또한 8:0이라는 압도적 판결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같은 시공간에 속한 것 같지만 다른 우주를 유영하는 ‘우리’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이해가 과연 가능한가?

안다. 오래 전 절친한 벗이 과외교습을 하던 한 고등학생은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단연 전두환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려서부터 군인 아버지로부터 ‘세뇌’받은 세계관이 곧 그의 우주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빗나간 존경심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극단적 성향을 갖게 되는 인지적, 사회문화적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일과, 극단적인 의견으로 무장한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논쟁하는 일은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함과 그런 생각을 존중함은 별개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내겐 모두에 대한 포용은 불가능하다.

이런 나의 한계 때문일까. ‘같은 국민’이나 ‘분열되었던 민심의 대통합’과 같은 수사가 불편하다. 상이한 여론의 분출을 분열로 이해한다면 통합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하나였던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민주주의 실현을 외쳤고 또 누군가는 반민주가 정상이라 외쳤다. 이 둘은 분열한 것인가? 혹 개념적으로 양립불가능한 주장 아닌가?

대한민국은 한국정치의 썪어 문드러진 환부를 도려내고 기사회생했을 뿐 결코 분열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대수술을 ‘분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장엄한 민주주의의 흐름에 겸허히 몸을 맡기는 자세이지 ‘모두가 하나되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넘어서야 할 것은 8:0 만장일치라는 판결의 외연과 판결문이 내포하는 구체제 사이의 균열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열망과 기존 체제의 수용한계 사이의 간극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분열에 대한 통합이 아니라 결코 좁혀진 적 없는 민의와 정치 사이의 균열. 이것이 지금 우리의 행동을 이끄는 좌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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