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단상

Posted by on Mar 22, 2017 in 강의노트, 단상,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우리말 진짜 잘하시네요.” vs. 언어의 소유권 (ownership of language)

한 영국인이 언급한 ‘우리’의 ‘기분나쁜’ 용례다. 오랜 한국 생활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이 영국인은 때때로 이 말을 듣는다. “어? 우리말 진짜 잘하시네요.”

저 말을 하는 입장에서 “우리말”은 “한국어”와 같다. 하지만 듣는이의 입장에서 “한국어”와 “우리말”이 같을 리 없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 어쩌다가 영어가 술술 나왔을 때 영국인이 내게 “You speak our language very well.”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영어가 왜 니꺼야?’까지 미치진 않더라도, 썩 기분 좋은 칭찬은 아닐 듯하다.

중요한 건 저 영국인이 한국어의 ‘우리’ 사용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말”이란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한국어의 ‘우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우리”라고 말하는 순간 “너희”가 생기고, “우리말”이라고 하는 순간 “너희말은 아닌 말”이 ‘태어난다’. ‘우리’라는 표현에 대한 반응은 숙고를 거치지 않은 날것이다.

“우리말”이라는 표현에는 언어의 소유권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다. 말은 누구의 것인가? 한국어는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의 것인가? 영어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적을 가진 이들의 것인가?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소유권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셈이 된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그 언어의 주인이라는 관점은 과연 적법한가?

그 영국인은 우리은행에는 안간다고 했다. 이름을 My bank 정도로 고쳐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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