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지하철

Posted by on Apr 28, 2017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오전 11시 수업. 2호선 열차 두 대가 연달아 오면 뒷 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늘도 그랬다. 열 번째 칸에 대충 열 명 정도가 탔으니.

좋아하는 자리에 앉는다. 대각선 끝자리에는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이어폰으로 뭔가를 들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 피곤해. 눈을 좀 붙일까? 어제 새벽까지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알람을 맞추어 놓자.’

열차는 당산철교를 건넌다.

당산역 열 번째 칸에 들어온 승객은 단 하나. 4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었다.

그리고,
십여 분의
공포가
시작되었다.

텅텅 빈 차량 안, 그 사내가 앉은 곳이 대각선 건너편의 여성 바로 옆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긴급 상황. 저 여성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저 미친 사내는 또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왜 저 남자는 키가 저렇게 크고 나는 이렇게 작은 것인가. 평소에 호신술이라도 익혀 두었어야 했나. 혹시나 일이 터지면 오늘 오전 수업은 어찌해야 하나. 다가가서 그 남자를 째려봐야 할까. 그건 너무 오버이지 않나. 아 내 가슴도 이리 쿵쾅거리는데 저 여성은 지금 어떨까.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두려움에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핸드폰을 보는 척하면서 계속 그쪽을 주시한다. 돌발상황에서 튀어나갈 준비를 한다. 제길. 영등포 구청에서도 문래에서도 사람들이 거의 타질 않는다. 앞차와의 간격 때문에 열차는 느릿느릿. 출근 시간 승객들 사이에 끼었을 때의 공중부양+호흡곤란보다 더 강력한 공포. 두려움의 무게가 시간을 기이이일게 늘어뜨린다.

째…………깍…………째……….깍…………

드디어 신도림, 사람들이 우루루 탄다. 주변 자리가 순식간에 채워진다. 두 사람 앞에 몇몇 사람들이 선다.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째….깍….째….깍….째….깍….째….깍…..

다행히 두 사람은 다른 역에서 내렸다.

건너편 여성이 20여 분 간 느꼈을 공포와 역겨움을 생각하니 지금도 아찔하다. 보기만 해도 이렇게 힘든데, 몸소 겪는 이의 마음은어떨까. 짐작조차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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