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가 된 삶

Posted by on May 3, 2017 in 단상, 수업자료, 인지언어학 | No Comments

대부분의 언어는 군대 관련 표현을 담고 있고, 영어 또한 예외가 아니다. engineer는 원래 군 엔진(military engines)을 만드는 사람을, ‘dress(ed)’는 병사들이 전투에 나갈 준비가 된(prepared) 상태를 뜻했다. 그래서 특별한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옷을 차려 입고 ‘출격 준비 끝’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중세의 병사가 된 것이다. 온갖 표현과 어울려 쓰이는 strategy 또한 기원은 전쟁이었다. 그래서 ‘휴가 전략’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가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외국어 교수법도 군대 및 안보상황과의 긴밀한 관계 하에 변화한다. 교실에서 자주 쓰이는 “따라 읽기(oral repetition)” “단어 바꾸어서 반복하기(substitution drill)” 등은 2차대전에 참전할 미군 병사들의 외국어 실력을 단기간에 증진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군대식 교수법(Army Method)의 주요 학습법이었다. 911 이후 미국의 외국어 관련 예산에서 아랍어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기도 했다. 미국 대학에서의 한국어 강좌 개설 또한 안보와 무관하다 할 수 없다.

정치의 영역에서 군사 메타포는 자주 사용된다. 선거의 ‘주요 격전지(key battleground)’나 ‘전면전(full-scale war)’ 등은 대표적인 예다. “military campaign”과 “election campaign” 모두 “캠페인”으로 불린다는 게 우연만은 아니다. 논쟁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오죽하면 “I demolished his argument.(그의 주장을 박살내 버렸지)”라는 표현이 있겠는가?

사회언어학자 데보라 태넌(Deborah Tannen)은 그의 저서 <Argument Culture>에서 언론, 정치, 교육 등의 분야에 만연한 대결적 문화에 대해 논의한다.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대화의 상대를 적(adversary)으로 간주하고 이를 기본적인 사고의 틀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도, 교육도, 문화도 ‘전쟁중’이다. 삶을 표현하는 기본 메타포가 ‘전쟁터’인 사회는 불행하다. 그래서 종종 묻는다. 이 전쟁은 정말 필요한 것이냐고. 누가 이 전쟁을 부추기고 유지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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