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습법’에서 ‘내 삶의 언어와 관계맺기’로

“영어를 배운다”는 추상성이 높은 명제다. 일단 ‘영어’라는 단어가 담는 내용과 행위가 광범위하다. ‘배운다’는 동사 또한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방학이 되면 으레 “영어 공부 좀 해야 되는데”라는 말을 듣는다. “뭐 하실 건데요”라고 물으면 “뭐 이것 저것”이라고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이것 저것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것 저것 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학습 대상의 추상성이 높다는 것은 그 대상과 자신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는 거대한 만큼 멀리 있고, ‘배운다’는 애매한 만큼 스르륵 빠져나간다.

학습은 추상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구체화하는 과정 즉, 구체적인 활동과 구체적인 내용과 구체적인 학습법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시간과 장소, 필기 스타일, 제스처와 발음, 혀의 움직임까지.

여전히 많은 학습법들은 ‘거대 전략(grand strategy)’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안된다 등등.

이런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일종의 수집(collection)을 시도할
만하다. 오바마가 좋다면 오바마의 연설들을 모으고, 멋진 표현을 모으고, 발음을 따라해 보는것이다. 스타워즈의 팬이라면 요다와 다스베이더가 한 말을 모조리 모아서 외워 보는 식이다. 주변에 널린 영어 간판들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거나, 영어로 된 백화점에 들어가서 상품들의 이름을 익히고, 어떻게 분류되고 있는지를 한국 백화점 웹사이트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크리스 앤더슨이 제안하듯 TED 강연을 보며 청자와의 유대를 높이는 표현, 설득을 위해 초석을 까는(priming) 과정, 발성이 달라지는 순간들 등에 집중할 수도 있다. 요리가 좋다면 자막이 제공되는 푸드 채널을 꾸준히 보면서 관련 표현을 익힐 수 있다. 요리쇼는 음식의 이름이나 계량과 관련된 어휘들 뿐 아니라 다양한 동작을 나타내는 구어 동사 표현의 보고다. (이와 관련하여 제이미 올리버의 Food Tube 채널을 추천한다.) 핀터레스트에서 명언을 모으거나, 유명 인사들의 유언을 모을 수도 있다. 잘 정리된 유머나 말장난 사이트를 독파할 수도 있겠다. 수준이 높은 학습자라면 기존의 수퍼볼 광고에 담긴 미국 대중문화의 단면을 분석해 볼 만하다.

결론적으로 저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영어가 아니라 내 손 안에, 혀 끝에, 수집 목록에, 유튜브 채널에, 노트 필기에, 다양한 간판들 속에 있는 구체적인 영어를 찾아야 한다. 영어공부의 핵심은 한국인 모두를 위한 영어학습법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영어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나만의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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