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

Posted by on May 14,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1. 수업 시간. 언어와 세계에 관한 설명을 하다가 SLR 이야기가 나왔다.

나: 여러분들. 세상이 하나지만 사진기를 여러 모드로 놓고 찍으면 다르게 나오잖아요. 언어도 사실 그런 장치라고 볼 수 있거든요? 사진기 모드… 셀카모드 같은 거 말고 SLR 카메라에서 말하는 모드 아시는 분?
학생 2명: DSLR!
나: 네?
학생 1: SLR 아니고 DSLR이요. SLR이라고 말씀하셔서요.
나: 원래 SLR이 있고 그걸 디지털로 만든 게 DSLR이거든요. 그래서 D가 붙는 거죠. 디지털.
학생 1: 아…

디지털을 통해 아날로그를 보는 학생들. 단순히 카메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 같다.

2. 연휴같지 않았던 연휴. 할 일은 줄지 않아 스트레스는 쌓여가는데 실망스런 일까지 발생. 투덜투덜. 쫑알쫑알. 그 가운데에서도 명랑하게 나의 짜증을 받아준 짝에게 아부 모드로 멘트를 날리는데…

나: 자기 원래 그렇게 성격이 좋았어?
짝: 응. (지체없이) 자긴 원래 그렇게 성격이 나빴어?
나: ………….

아부 안통함. 역풍까지 맞음. 안좋던 성격 더 안좋아짐.

3. ‘내용이 제일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도 무시할 수 없다’ vs. ‘내용과 형식은 씨줄과 날줄처럼 텍스트를 만들어간다’

온라인에서의 논쟁이 나름 괜찮은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면 내용과 형식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듯하다. .

4. 인천공항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발표된 다음 날.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인천공항 뉴스 봤다. 우한테는 좋은 소식 없을까?”
“없을 거 같은데요.”
“그렇구나.”

아마 없을 것이다.

5. 방학과 다음 학기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한다. 형편이 나름 좋은(=강의가 꽤 들어오는) 강사임에도 몇 주 후 어찌 될지 모른다.

그 와중에 감사+씁쓸하게도 학생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가장 실망했던 과목을 다시 맡게 되었다. 트라우마를 넘어설 수 있을까. 별것 아닌 일들이 왜 몸에 딱 붙어 떨어지질 않는가.

6. 학기가 5주 남았다. 끝나고 안아팠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일상스케치>라는 제목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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