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기억

Posted by on Jun 29, 2017 in 과학, 단상 | No Comments

‘기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간다’는 말이 있다. 더이상 주마등을 보긴 힘들지만 종종 접하게 되는 표현이다.

영상매체의 발달로 이 표현은 곧 수명을 다하지 싶다. ‘옛 기억들의 몽타주’나 ‘그 여름의 기억이 롱테이크로 남아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누군가는 웹툰같은 기억을 ‘스크롤 다운’하다가 씰룩이는 엄지손가락을 만날 지도 모른다.

영화 이전 세대와 영화를 좀 보면서 자란 세대, 태어나서부터 영상매체와 함께 살아온 세대가 추억을 떠올리는 방식은 꽤나 다르지 않을까? 예를 들어 할아버지와 손녀가 놀이공원에 갔다면 할아버지가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과 손녀가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편집이 영화를 만든다. 똑같은 원본 필름에서 완벽히 다른 영화가 탄생한다. 연령별로 ‘주마등 같은 기억들’의 사용빈도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이는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방식(modality)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요즘 자기 전에 머릿속으로 롱테이크를 찍곤 한다. 어디까지가 정확한 기억이고 어디까지가 지금의 내가 채워넣은 장면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 자신의 뒷모습을 따라 학교에 가는 기억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에 빚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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