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공부 이야기 (1)

<초등(아니 국…)학교 시기>

언제였나, 영어공부를 시작한 게… 아마 ABC쏭을 따라 부르기 시작한 건 5학년 말쯤이 아니었을까? 그 전에는 영어라는 말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건 몰랐고 그냥 미국말인 줄 알았다. Thank you. Hi! 정도를 따라 했던 것 같다.

세상에 영어공부를 위한 책이 존재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6학년 여름 방학. 같이 살던 외삼촌으로부터 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책 제목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알파벳과 주제별 단어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ABCD가 나왔었고, 대문자와 소문자가 나왔었던 것 같다. 글자를 따라 쓰는 연습도 있었던 것 같고.

본문은 주로 단어 위주였다. 1-12월의 이름을 그림-철자로 배우고, 계절의 이름도 배웠다. 비온다, 춥다 등의 ‘날씨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이 기억나고, 유명한 지역의 지명을 영어로 읽어보았던 것도 같다. 뉴욕 뭐 이런 거?

돌아보면 이 시기 공부가 썩 만족스럽진 않다.

외삼촌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발음이 좋지는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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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학습을 지금의 영어교육과 비교해 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실 가장 큰 차이점은 “소리”가 없이 영어를 대했다는 것이다.
소리가 있었다면 외삼촌의 발음을 따라 했다는 것! 순식간에 그 발음에 익숙해져버렸다. 음하하…

사실 아동의 언어학습에 있어 자연스런 음성없이 언어를 처음 접한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렇게 한참을 공부했다. 중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진도에 맞추어 들려주시는 교과서 본문과 다이얼로그 외에는 영어 말소리를 들을 기회가 없었다. 듣기평가도 활성화 되지 않았던 시절 아닌가.

중학교 초반까지 한 주에 한 번 외삼촌으로부터 ‘사교육’을 받았지만, 영어 소리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고, 나는 영어가 그렇게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즉,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공부하고 있었고 단어-뜻 짝을 암기하는 식으로 공부 패턴을 잡아가고 있었다.

여기에서 영어공부의 첫걸음이 어그러진 것일까?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영어를 싫어하진 않았다.
암기는 나름 잘 했기 때문인가 보다.
혹은 삼촌이 조금 무서웠거나~

<중학교 시기>

I.
중학교 때 영어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은 오로지 성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암기과목으로 생각하고 공부해왔던 습관은 여전했다.

듣기평가는 아주 형식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듣기를 평가한다기 보다는 교과서의 본문을 제대로 암기했는지 평가하는 식이었다.

즉, 영어 소리 자체에 대해 익숙해지지 않더라도, 교과서 본문의 내용을 충실하게 암기하면 풀 수 있는 듣기 문제들이 많았다.

듣기 문제의 탈을 쓴 본문 암기 문제라고나 할까…

발음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영어는 ‘말’을 하기 위해 배우는 것인데, 교실에서 말하기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선생님들의 수업을 옮겨 보면 대략 이렇게 된다.
(거의 모든 분들의 패턴이 똑같았다.)

1. 오늘의 단어 – 오늘 배울 단어를 선생님이 읽어주고 반 전체가 따라한다. 보통 한 단어를 2번 정도 따라 읽고 뜻을 배우는 식. 아주 가끔 선생님이 학생을 일으켜 발음을 하게 하고, 그 발음이 적절치 않은 경우 형식적인 교정을 해주셨다. (야 너 그거 쥐프트 아니고 기프트야.)

2. 오늘 배울 내용 들어보기 – 처음의 Listening 부분은 한 번에 다 듣고, 본문 부분은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듣는다. 예습을 해 온 경우에는 듣기가 아니라 교과서 내용 확인이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보통 1번 정도 듣게 된다.

3. 교과서 해석하기 – 교과서 문장들을 하나씩 해석하는 과정이다. 필요한 경우 선생님께서 처음에 나온 “오늘의 단어”들을 상기시켜 주신다. 이때 교과서 가장자리는 필기로 빼곡해진다.

4. 문법 설명 – 교과서 해석에 필요한 설명을 해주신다. 해석 시 중간 중간에 문법이 나오기도 하고, 그 과의 중심 문법 사항을 따로 설명해 주시기도 하신다.

5. 다시 듣기 – 일단 한 번 해석이 끝나면 다시 테이프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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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위의 순서에 따라서 공부를 하였다.

교과서에 Further Study라는 심화학습 부분에서는 주요 구문과 문법 및 발음을 다루었다. 요즘에야 발음 문제가 시험에 거의 출제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발음 문제는 반드시 시험에 출제되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문법 문제의 비중이 꽤 되어서, 교과서 본문 독해 시간에도 문법 설명을 꽤 길게 들었던 적이 종종 있었다.

Dialogue를 배울 때는 두 사람을 일으켜서 Role Play를 시키시기도 했다. 사실 말이 Role Play지, 역할을 맡아 책을 읽는 수준이다. 사실 그 ‘읽는 수준’도 안되는 학생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에 Role Play는 많은 경우 다시 ‘따라 읽기’로 자연스럽게 바뀐다.

교과서 말미의 연습문제는 그냥 숙제로 내준다. 다음 날 검사를 하셔서 안해 온 아이들은 손바닥을 자로 맞았던 기억…

본문 뒤의 Comprehension Check-up은 “너희들이 해봐”라는 말과 함께 그냥 넘어간다.

지금 돌아보면 완벽한 문법번역식 수업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의미있는 의사소통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학생들이 영어의 초보였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 수업 시간이 위에서 묘사한 방식으로 1년 내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영어가 원래도 어려운 과목인데 저렇게 가르치니 재미가 더 없어졌다.

“그래도 다른 과목에 비해 잘 하는 과목 영어.”

그거 하나 붙잡고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잘하는 과목이니 계속 잘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이랄까… 그래서 사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영어 성적이 참 좋았었다.

그러나 나의 시련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II.

중학 때 영어교재는 교과서 + 두 권의 문법서였다.
그 유명한 성문 기초영문법과 성문 기본영어.
당시의 영어교육에서 빠질 수 없는 두 권의 명저(?!).

사실 주변에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는 형 누나만 있었어도 나는 이 두권에 목을 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두 권의 책은 반드시 봐야 해. 그것도 달달 외울 정도로.”
라고 말했다. (비극의 시작~)

중간에 아버지가 안현필씨의 책을 두어권 사오셨다. 당시에는 성문에 대적할만한 세력이 없었고, 안현필씨의 시리즈 몇 권이 마니아층 사이에서 영어의 비법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현필 시리즈를 본다는 것은 왠지 이단으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독서실에 가면 누구 책꽂이에나 있는 성문 시리즈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까지 성문 기초영문법을 5번 정도 독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 겨울방학 때 성문 기본영어를 반쯤 대충 봤고.

문제는 그거였다.

그렇게 공부해도 학교 성적은 잘 나왔고, 영어로 Communication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영어 듣기나 말하기를 늘려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문제집의 문제들은 독해 아니면 문법이라서 그럭 저럭 맞출 수 있었다.

그 달콤함이 고등학교 때의 쓰라림이 되었다.

흐흑….

III.

중학교 때의 영어공부 방법을 기억하면서 후회되는 점도 많지만 나름대로 스스로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도 있다.

여러 가지 면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영어라는 과목을 ‘꾸준히’ 공부했다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 3학년 때는 하루에 1-2시간씩 거의 1년을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성문 기초영문법을 마지막으로 보고, 성문 기본영문법에 있는 문법과 독해를 꼼꼼하게 공부했다. 맨 뒤에 있는 구문 모음들도 꾸준하게 보아서 영어의 대표적인 패턴에 익숙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어 자체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쌓게 된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외고 입시 원서 마감 며칠 전에 “외국어 고등학교라는 곳에 가볼래?”라고 했을 때에도 영어가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험은 무지 어려웠다. ㅎㅎ) 결과적으로는 외국어 고등학교 준비를 하지 않고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OO년도 더 된 일이다.

중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요약하면…

1. 쓸데없이 문법에 너무 치중했다.
2. 듣기는 아주 아주 기초적인 것에 머물렀다.
3. 말하기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이점은 매우 후회된다.
4. 읽기의 input은 꽤 되었으나 나머지 영역에서의 언어 input은 거의 없었다.
5. 영어를 거의 매일 공부하는 습관을 길렀다. 결과적으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점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나름대로 영어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나, 외고에 진학해서는 그야말로 강력한 문화적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다른 과목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물안 개구리식의 영어공부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던 것이다.

(고교편은 다음 시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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