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용론 단상

Posted by on Jul 9,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이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문맥에 따라 말(話)을 어떻게 사용(用)하는가를 설명해내는 언어학의 하위 분야입니다. ‘적절성(appropriateness)’은 화용론의 뼈대가 되는 개념 중 하나구요.

모국어를 공유하고 동일한 사회 내에서 성장하며 일정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화용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언어학 교과서의 암묵적인 가정입니다. 비슷비슷한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같은 말을 쓰며 자랐으니 언제 ‘미안합니다’라고 해야 하는지, 언제 ‘와 쩌네요’라고 해야 할지 모르기는 힘들다는 것이죠.

이런 가정이 순진한 것임을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온라인에서의 포스팅과 댓글을 보면 할말 못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한답시고 혐오의 언어를 내뱉는 사람들도 많구요. 때로 말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말할 타이밍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구별해야 할 순간들은 수시로 찾아오죠.

각종 사건의 가해자들이 하는 이야기를 보면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배우는 일만큼 어려운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논란이 될만한 신문기사의 답글을 보면 처참하기 짝이 없습니다. 문맥도 적절성도 사라진 자리에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꼴이랄까요.

언젠가 길을 잃고 빙빙 돌아 무려 3천 원 정도를 더 받아간 택시 운전 기사는 결제를 마치고 제 카드를 돌려주면서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먼길 돌아오셨습니다.”

말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문맥은 사회문화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영역이 아닌 자신의 두개골 영역에 한정되어 있죠. ‘말은 소통의 수단이다’와 ‘문맥은 내가 정한다’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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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이런 실수를 종종 합니다. 모르고 지날 때도 있고, 오해를 사서 억울할 때도 있고, 바보같은 말에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실수를 알아채고도 사과할 타이밍을 놓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쩍 넘기기도 하고요. 언어학을 공부했다는 게 때로는 별무소용이라는 걸 깨닫기도 합니다.

그간 제 의미없는/바보같은/느닷없는/설명충같은/짜증나게 하는 답글에 마음 상했던 분들께 죄송합니다. 순전히 제 부족이요 잘못입니다. 앞으로는 좀더 적절한 언어사용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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