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1) – 언어학습? 언어습득? 언어구축?

Posted by on Jul 15, 2017 in 강의노트, 삶을위한영어공부 | No Comments

외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과정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사는 아마도 ‘학습하다’와 ‘습득하다’일 것이다. (외국어를 학습/습득하다; learn/acquire a foreign language) 실생활에서는 구별 없이 쓰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 보았을 때 약간 다른 함의를 가지고 있다.

학습(learn)은 무난한 표현으로 가장 널리 쓰인다. 이에 비해 ‘습득’은 미묘한 함의를 담고 있어 언어학습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ecological approach)을 추구하는 소수 학자들에게는 피해야 할 동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습득(acquisition)은 (1) 외부에 있는 것들이 내부로 들어와서 (2) 자신의 소유가 된다는 함의를 지닌다. 경영학에서의 인수합병(M&A(Mergers & acquisitions)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직역은 ‘합병인수’인가? ^^)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보가 개인의 소유가 된다는 관점은 서식처(habitat)와 어포던스(affordances)를 강조하는 생태적 접근과 충돌하는 것이다.

이를 비판하며 제시된 대안적 개념으로는 참여(participation)가 있다. 여기에서는 언어를 소유물로 보고 이를 습득하는 것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특정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즉,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코드들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문화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일이다. ‘합창의 기술을 습득한다’와 ‘합창단의 일원이 되어 활동한다’라는 두 명제를 비교하면 ‘습득 vs 참여’라는 관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인지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어를 창조 혹은 구축한다’라는 개념이다. 이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영장류 연구를 이끌며 용법기반 언어습득을 연구하는 마이클 토마셀로의 역작 <Constructing a Language>의 제목이기도 하다. 학부생 한 명과 나누었던 대화 한 토막을 살펴봄으로써 “언어의 구축”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

나: “그러니까 문자를 아직 안배운 아이들을 생각해 봐요. 주변 소리를 모방해서 “가(go)”, “감(persimmon)” 같은 것을 발음하면서 두 단어 모두 ‘가’를 포함하고 있고, 다른 단어들에도 /ㄱ/, /ㅏ/, /가/ 소리가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것, 나아가 /가/가 자음 ‘ㄱ’과 모음 ‘ㅏ’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수 있죠. 이런 점들을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발음을 해낼 수 있어요.”

학생: “발음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죠?”

나: “특정한 발음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발음이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거든요. 성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안될 수 있지만,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분절음의 체계적인 조합으로 단어가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해요. 문법적인 규칙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고요.”

학생: (연신 갸우뚱대며)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요?”

………..

언어학습 이론을 공부하면서 흔히 나타나는 오류를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성인의 언어, 나아가 ‘성인이 이론적으로 체계화해놓은 언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이는 아동의 언어습득과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우리는 대개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한다(acquire a language)고 표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른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커뮤니티에 참여(participation)하면서 언어를 구축(build/construct a language)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언어는 성인에게서 아이들에게로 전달(transfer)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한 의사소통적 상황을 경험하면서 창발(emerge)한다.

이미 언어습득을 마친 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성인언어가 언어학습의 최종 목적지인 듯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어습득을 위한 최소한의 생물학적 기제(architecture)만을 장착하고 있을 뿐어떠한 설계도도 갖고 있지 않다.

아동의 언어발달은 주어진 최종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는 일이라기 보다는,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성인이 보는 언어체계의 광대한 지도를 아동들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래도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다.

다른 용무 때문에 내주를 기약했으니, 다음 수업이 끝나고도 학생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이걸 이해 못시킬 수가 있을까요?”

==

언어학습은 단지 습득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언어는 (실제적/상상적)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일이고, 새로운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두를위한영어교육학강의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