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를 할 시간

Posted by on Jul 16, 2017 in 강의노트, 단상, 수업자료 | No Comments

일전에 언급했듯이 맘고생을 좀 심하게 한 수업이 있었다. 바보같은 두려움이 수업을 잡아먹었고, 몇몇 학생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연신 돌아보는 걸 보면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진 않았나 보다.

처음부터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응용언어학 전공자로서는 드물게) 해당 분야에서 실무자로 일했고, 프로그램 기획, 구축, 실행, 평가의 사이클도 여러 번 돈 경험이 있었다. 해될 것이 없는 자산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한 것은 몇몇 학생들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분명 강사로서 수업상황에서의 권력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매번 면접관들 앞에 선 기분이었달까. 몇몇의 항의성 이메일과 거침없는 코멘트 속에서 느껴지는 태도를 요약하면 이거였다.

‘그래 너 얼마나 잘 하나 보자.’

가르치는 일을 하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의 찌질한 트라우마를 차분히 들은 친구가 입을 열었다.

“요즘 친구들이 그런 경향이 좀 있는 것 같아. 얘네들이 어렸을 때부터 인강을 듣고 자랐잖아? 그러니까 유명한 강사라도 좀 보다가 ‘아니네’ 하면 다른 강사, 또 ‘아니네’하면 다른 강사. 이렇게 선생을 골라가면서 공부한 세대거든. 그리고 고등학교 때나 학원 같은 데서도 무기명으로 평가를 해. 그때 마음에 안드는 게 있으면 자기 감정을 여과없이 다 쏟아놓기도 하지. 그러니까 선생을 고르고 평가하고 여차하면 ‘버리는’ 데 익숙해지는 거야. 그냥 어렸을 때부터 죽 해왔던 일이라 너무 자연스러운 거지. 너 개인에 대한 태도라기 보다는 그렇게 자라온 걸 거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게 다는 아니겠으나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수업을 맡고 그들과 마주하면 구조탓을 할 수는 없다.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일.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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