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영어교육학 강의 (3) – 주어의 재발견

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의미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먼저 다음 두 시나리오를 봅시다.

시나리오 1

교사: “자 여기, 문장 제일 앞에 나오는 이걸 뭐라고 하죠?”
학생: “명사요.”
교사: “그건 품사구요. 문장에서 하는 역할이 뭐예요? 5형식 배운 사람은 알텐데…”
학생: “주어요!”
교사: “맞아요. 주어. 그럼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는 거 뭐뭐 있지?”
학생: “명사요.”
교사: “좋아요. 명사. A cat 같은 거.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를 대신하는 거, 뭐 있지?”
학생: “대… 명사?”
교사: “그렇죠. 명사를 대신하니까 대명사. ‘대’가 대신한다는 뜻이예요. It, she, he 이런 것들이 대표적이죠. I도 있구요. 명사, 대명사. 그리고 또?”
학생: “……..”
교사: “명사나 대명사 말고 동명사나 To 부정사도 올 수 있죠. 오케이? 자주는 아니지만 That 절도 올 수 있어요. 여기에서 That은 명사절을 이끄는 거죠. 그럼 예문을 몇 개 더 살펴볼게요.”

시나리오 2

교사: “자 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볼 수 있어요.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 주제에 대한 설명. 앞의 것을 subject라고 하고 뒤의 것은 predicate라고 해요. 근데 이런 용어는 몰라도 돼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거지. 자자 다시. 문장은 뭘로 이뤄진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랑 그것에 대한 설명. 따라해 봐요. 주제와 설명.“
성우: “주제와 설명.“
교사: “오케이 좋아요. 그럼 성우는 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성우: “음… 영화요.“
교사: “영화요? 그럼 이렇게 시작하면 되겠네요. “The movie” 따라해 보세요. “The movie”.
성우: “The movie”.
교사: “영화가 어쨌어요?“
성우: “지루했어요.“
교사: “지루했다… 그럼 지루했다를 표현하는 단어를 찾아봐야겠네요.“
성우: “어떻게 찾죠?“
교사: “음 쉬워요. 한영사전을 찾으면 되죠.
성우: “(사전을 찾는다) Boring?“
교사: “맞아요. 근데 예문을 잘 봐요. 거기 boring만 있어요?“
성우: “아니오. 앞에 is가 있네요.”
교사: “그렇죠? 그러니까 boring은 혼자 못쓰이고 is 같은 애들이랑 같이 쓰여요. ‘is boring’ 이렇게. 좀 재미있게 표현하려면 The movie made me yawn. 그러니까 영화는 나를 하품하게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겠죠?”
성우: “네.”

…(중략)…

교사: “그럼 영화 말고 다른 거 이야기해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성우: “친구 충식이요.”
교사: “오케이. 그럼 “friend”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My friend 충식 이런식으로 쓰면 되겠네요.”
…(중략)…
교사: “근데 영화나 중식이,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 이런 거 말고 다른 이야기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음… 뭐 좋아해요?”
성우: “사진찍는 거요.”
교사: “오 좋아요. 사진찍는 거. 그렇게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Taking photos 같이 표현하면 되죠. 사진찍는 거 어때요?”
성우: “재미있어요.”
교사: “그럼 Taking photos is fun.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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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시나리오에서 ‘주어’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구조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예 또한 명사, 대명사, That-절 등의 문법용어(grammatical terms) 혹은 상위언어 용어(metalinguistic terms; 언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주어는 문법용어로 전달되기 보다는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가’라는 의미 범주로 제시됩니다. 이에 따라 학생은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를 이야기하고 (저는 이걸 ‘던지고’라고 종종 표현합니다) 교사는 이에 대한 설명을 이끌어 냅니다. 사실 이것이 본래의 “subject”/”predicate” 짝에 근접한 설명일 수 있습니다. 문장이 사실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하는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지는 거죠.

요약하면 “문장 = 말하고 싶은 주제를 던지는 부분 + 그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정도 되겠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주부와 술부 정도 될 듯하네요. 그런데 ‘주부’나 ‘술부’ 같은 용어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꽤 많더군요.

결국 시나리오 2에서는 시나리오 1에서와 같이 상위언어에서 상위언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라, 말하고 싶어하는 소재를 이끌어내고 이에 대해 설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의미적 접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법용어가 완벽히 자리를 잡은 성인이라면 첫 번째 접근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이 사회는 너무나 많은 문법교육을 요구하죠. 거시적으로 보면 교실에서의 교사-학생간 소통 규약(여기에서는 문법용어를 지칭)을 확립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비용이 투입되고 있는 것입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법용어 및 시험 때문에 영어를 포기하게 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비용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면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문법용어와 형식적 측면을 배제하고 최대한 의미만으로 문법구조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연령이 낮은 학생을 가르친다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죠.

하지만 여전히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습속(habitus)에 뿌리를 둔 문법 설명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중에서도 오로지 문법으로만 영어를 배운 이전세대의 교육방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의 세력을 지켜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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