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運七技三)’ 단상

Posted by on Nov 24, 2017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운과 기를 나누는 것이 마치 본성과 양육을 나누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일례로 ‘네가 지금 쓰는 글은 너의 유전자 45, 사회문화적 요인 55로 설명 가능해’라고 하면 그저 우습지 않겠는가? 하지만 운과 기의 비율을 굳이 나누어 보라 한다면 ‘운9999에 기1 정도 아닐까’,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 이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운의 작용이 아무리 크다 해도 개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인 1을 이루기 위해 쏟는 피땀은 소중하고 본질적이며 당사자에겐 그 무엇보다 거대하고 뜨겁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약하고 미약할 뿐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일만 분의 일에 불과하다 하여 가벼이 여기지 않고 싶다.

나아가 나에게 허락된 9999의 좋은 운들을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되길, 누군가에게 허락된 9999의 운이 나에게도 허락될 수 있길 바란다. 그리하여 9999에 대한 불만과 좌절, 걱정과 비난으로 삶을 소진하지 않고,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만 충실히 갈고 닦아도 살만한 사회가 되기를 빈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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