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ck Chain vs. LinkedIn 그리고 1/N

Posted by on Jan 15,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처음 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이제 1/n에서 n이 무한대로 가는 것이구나’와 ‘이거 LinkedIn에서 제공하는 “업무능력(skills)과 이에 대한 보증(endorsements) 기능의 끝판왕인가?”였다. 각각에 대해 부연해 보려 한다.

1. 국가와 기간은행이 쥐고 있던 1/n의 권력을 이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들에게 부여하여 1/n의 값을 0에 수렴하게 하는 것. 블록체인의 다양한 측면 중 내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다.

몇몇 덩치들이, 그것도 엄청난 덩치들이 모여 신뢰를 보장하느냐, 아니면 그 누구도 힘을 쓸 수 없게 만들되 모든 것을 투명하게 관리하여 신뢰를 보장하느냐의 문제이다.

즉, 블록체인의 핵심은 권력과 신뢰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내고, 기술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게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아니라 화폐가 작동하는 기반을 바꾸어 낼 가능성이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리고 이는 단지 화폐경제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라고 쓰고 이걸 SteemIt에 올려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2. LinkedIn은 세련된 인맥관리 시스템 정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나도 뭔가 싶어서 만들어놓고 잘 들어가지 않는데, 가끔 알림 메일이 뜬다. 누군가가 나의 능력(skill)에 대한 보증을 했다는 알림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필자가 “Academic Writing”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한 것에 대해 30여 명이 보증한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링크트인의 찌름(nudge)을 당해) ‘자발적으로’ 보증한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방식의 보증, 즉 특정대학이나 교육프로그램의 보증 방식과는 다르다. 몇몇 ‘덩치들’이 발급하는 졸업장과 수료증으로 대표되는 인증방식에서 벗어나 주변인들과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확인해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능력을 부풀리기로 작심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서로 인증을 해준다면? 자화자찬 난리법석 속에서 모두가 멋진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일종의 집단사기극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숫자를 거의 무한으로 늘린다면 어떨까?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작당할 이유도, 공모할 방법도 없게 만들어 버린다면?

최근의 블록체인 광풍과 관련해서는 네 가지 정도의 생각이 든다.

1. 최근의 투기열풍을 보면서 떠오른 건 우습게도 인터넷의 대중화 초기 ‘.com’ 도메인 구입 경쟁이었다. 별것도 아닌 도메인의 가격이 치솟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도메인을 사모았다. 그걸로 돈을 꽤 번 사람도 있지만 쌓아놓은 도메인이 처치곤란해진 사례가 훨씬 많았다. 이 시기와 이후 닷컴버블 붕괴의 경험을 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닷컴비즈니스의 어두운 면만은 아니다. 서울비Lee Jun Seop가 말했듯 닷컴은 붕괴했지만 인터넷이라는 기술은 살아남았고, 이 기반 위에서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

버블을 제거하고 땅을 다지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2. 현재의 투기열풍은 분명 문제다. 정부가 그냥 손놓고 있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합법/비합법이라는 한 가지 잣대로 이 사태에 대응하는 것은 실로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것도 사실이다.

열풍의 밑바닥에는 특히 젊은 세대의 사회경제적 박탈감이 자리잡고 있고, 이는 기존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탈법적’ 투자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법 내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시스템이 지탱하지 못하는 생존에의 욕구는 어디론가 터져나가게 되어 있다.

3. 정부 정책기조 중 하나가 4차산업혁명 아닌가? 소위 ‘4차산업혁명’의 외연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라도 블록체인 기술을 투기의 관점으로만 파악하기 보다는 새로운 플랫폼이 권력과 신뢰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검토하며 그 순기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4. (좀 다른 이야기지만) 인터넷 초기의 흥분이 그랬던 것처럼 블록체인은 우리가 거대한 세계의 일원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는 동네 주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블록체인은 기존의 중앙집권적 경제시스템과 비교할 때 분명 아나키적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이는 다시 공동체의 작동방식으로서의 아나키를 배반하는 듯하다.

덧.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낸 소결론은 이거였다.

“결국 기본소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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