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사회

Posted by on Jan 19,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인지언어학, 일상 | No Comments

조지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은 1980년 그들의 기념비적 저서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에서 인간 언어가 기본적으로 메타포적이라 말한다. 메타포가 언어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사고 자체가 메타포적이고 이것이 언어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는 아마도 “ARGUMENT IS WAR(논쟁은 전쟁이다)”일 것이다.

참고로 영단어 argument에는 전쟁을 직접 가리키는 단어가 들어있지 않으나 한자어 ‘논쟁(論爭)’에는 ‘다툴 쟁(爭)’이 들어가 있으므로 학술적으로 적절한 번역은 아니다. 하지만 argument의 뜻을 나타내는 데에는 가장 적합한 단어이기에 그대로 둔다.

다음 예들을 생각해 보자. 논쟁에 있어 strong/weak point가 존재하고, 이걸 attack하거나 defense한다. 이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strategy(전략)를 잘 세워야 하고, 때로는 상대방의 주장을 완전히 뭉개(demolish) 버리기도 한다. 상대의 논지를 하나 하나 깨뜨리는 행위는 shoot down으로 종종 표현되며, 적확하고도 효과적인 비판을 묘사하기 위해 ‘right on target’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미 알아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위의 표현 모두는 전쟁 상황에 그대로 쓰일 수 있다. 이들 외에도 상당히 많은 표현이 argument와 war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즉 논쟁을 묘사하는 표현 중 압도적 다수는 전쟁을 묘사할 때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점에서 argument는 춤(dance)이나 정원 가꾸기(gardening) 혹은 건물 짓기(building)가 아니라 전쟁에 가깝다. 개념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레이코프와 존슨의 논리는 간명하다. 전쟁을 나타내는 표현과 논쟁을 나타내는 표현을 구별할 수 없을 지경이라면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삶으로서의 은유> 전반부는 다양한 예시들을 동원하여 이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어제 가상화폐 관련 논쟁을 1분 쯤 보다가 껐다. 이후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을 보니 2/3 이상이 ‘~가 이겼다’, ‘압승’, ‘제압’ 등의 단어를 내세운다. 내가 보기엔 별 의미 없는 평가이지만 실제 투자를 하고 있거나 관련 이슈들을 따라가는 분들은 나름 무게를 두는 듯하다.

토론이 전쟁이라면 승패가 전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토론이 무지를 밝히는 작업이라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가끔 모든 걸 승패로 환원하려는 세계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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