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공정(類似公正, pseudo-fairness)

Posted by on Feb 12, 2018 in 강의노트, 단상, 일상 | No Comments
요즘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공정’이라는 표현에 관심이 많다. 공정을 따옴표 안에 넣은 것은 단어를 인용한다는 뜻과 함께 공정이 아닌 것이 공정이라 불린다는 뜻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정’이 가장 언급되는 경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에서인 듯하다. 비정규직 공무원, 인천공항 노동자, 비정규직 교사 등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 글이 다루려는 주제는 아니다. 언급한 ‘공정’의 대표적 용례는 아래 기사 참조.)

“비정규직 눈물 닦아주려다 취준생 기회 박탈… 이게 공정한 나라냐” (한국경제)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21118271

난 이 기사의 제목이 우리사회의 ‘유사공정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다소 이상적이라고 불릴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공정’은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 개념이다. 노동자 전체, 나아가 모든 시민을 포괄하는 공정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모두에게 적용되는 공정의 개념에서 출발하지 않는 공정은 필연적으로 ‘강요하는 자’와 ‘강요받는 자’라는 불공정한 위계구조를 생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논의는 공정의 적용 대상을 취준생과 비정규직으로 손쉽게 규정한다. “비정규직 눈물 닦아주려다 취준생 기회 박탈… 이게 공정한 나라냐”에서 공정의 잣대 아래 놓이는 집단은 취업준비생과 비정규직 뿐이다. 정규직은 어디 있는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이들은 어디 있는가?

특정한 집단–위의 경우에는 노동(가능)계층에서 약자 집단–만을 문제삼는 ‘공정성’ 논의는 공정의 본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정규직 바깥에 있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공정함이 과연 ‘공정함’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정규직이 공정 논의에서 열외일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정규직 공채(시험) 통과 여부’이다. 이 외엔 그 어떤 기준도 없다. 과거에는 소위 ‘좋은 대학’에 가서 한 평생 덕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젠 ‘시험에 통과했으니’ 공정함의 기준을 모두 만족시켰다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이들과 같이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다수가 ‘공정 열외 패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공정은 유사공정(類似公正, pseudo-fairness)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묻고 싶다.
자기 자신을 제외한 공정함은 얼마나 공정한가?
그것을 ‘공정’이라 부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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