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우연

Posted by on Jun 27,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동네 서브웨이에 갔다. 점심시간, 줄이 길었다. 어제 시작한 앨리슨 고프닉의 책에서 모방학습에 대한 챕터를 읽고 있었다. 모방이 인간의 성장과 문화, 나아가 양육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우리가 은연중에 얼마나 많은 모방을 하며 살아가는 지, 부모 자식간에 모방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어나는지 등등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한 10분 기다렸을까. 앞의 한 여자분이 “허니오트로 주세요”라며 주문을 시작했다. 음, 나와 같은 빵이군. “다음손님은요?” “허니오트요.” “아메리칸 치즈 괜찮으세요?” “네.” “다음 손님도 치즈 괜찮으세요?” “네.” 아, 이거 뭔가 따라하는 것 같아. 따라하는 거 절대 아닌데! 다음은 이후 전개된 상황.

“토스트 해드릴까요?”
“네.”
“다음 손님은요?”
“네. 해주세요.”

“야채 빼는 것 있으세요?”
“없고요. 올리브 많이 넣어주세요.”

헉. 올리브! 그건 내 대사인데!!

“아채 빼는 거 있으세요?”
“아니오.”

‘올리브 많이 넣어주세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간신히 참았다. 빵에, 치즈에, 토스트에, 야채에… 올리브까지 똑같이 말하면 급 ‘스토커’가 되어버리는 것 아닌가. 순간 철저히 독립된 사건을 인과관계로 묶어버리는 나의 허약한 마음에 실망했다.

“드레싱은요?”
“랜치랑 후추 넣어주세요.”
“다음 손님은요?”
“(괜히 신나서) 그냥 없이 주세요!”

앞 사람은 아무 생각 없었을텐데 ‘올리브 많이 넣어주세요’를 참은 게 왠지 창피했다. 그래서 앞사람이 나가고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 하며 30초 정도를 기다렸다가 가게문을 나섰다. 스토커 싫어!

사건 요약: 앨리슨 고프닉의 지적대로 인간의 생존에 있어 모방은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 덜 모방함으로써 이상한 사람이 안될 수 있다. 서브웨이는 두 사람씩 묶어서 물어보는 거 안하면 좋을텐데…

오늘의 창피한 우연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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