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something vs. an understanding of something

아래 OO님의 답글처럼 ‘셀 수 없는 명사와 셀 수 있는 명사’를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이를 부정관사 사용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명사와 관사의 관계는 생각보다 유연하기 때문입니다. 언급하신 understanding을 예시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Understanding something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이해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 표현에는 어떤 관사도 붙어 있지 않죠. 무관사는 절대적인 일반화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냥 막연히,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이해하는 일”을 뜻합니다.

이에 비해 “an understanding of something”은 여러 가지의 이해(multiple ways of understanding)가 있음을 상정하고 이 중 하나의 이해방식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수학의 분야 중에 위상수학(topology)이 있습니다. 제 짧은 지식으로는 수학의 하위 분야 중에서 꽤나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깊이 파고들면 뭐 안 어려운 게 있겠습니까만 암튼.) 이를 가지고 두 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Understanding topology is not easy. (위상수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지.)

She proposed a new understanding of topology. (그녀는 위상수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안했다.)

먼저 관사가 쓰이지 않은 “Understanding topology”는 막연하고 일반적으로 “위상수학을 이해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후자의 understanding 앞에는 an이 붙어 있지요. 이는 위상수학에 대한 다양한 이해법이 있고 이중 한 가지 이해방법임을 의미합니다.

다만 ‘an understanding of something’에 비해 understandings의 빈도는 심히 낮습니다.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봐야죠. 이는 인간의 개념화가 일어나는 지형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해하는 방식’을 이야기함에 있어 단수를 훨씬 더 자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방식들”에 비해 “일종의 이해방식”이 개념적으로 훨씬 현저하다는(salient) 말이지요. Understandings라고 절대 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쓸 일은 매우 적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관사를 공부함에 있어 우리는 “어떤 명사에 a가 붙어?”라고 묻지 말고, “어떤 상황에 명사에 a를 붙일 수 있어?”라고 물어야 합니다. 단어의 특성으로서 관사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화의 도구로서 관사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관사를 깊이 이해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관사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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