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며

Posted by on Jul 24,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그의 별명 중 하나는 “비유의 달인”이었다.

비유는 그저 또 하나의 수사가 아니다.

비유는 두 세계를 잇는다.

“내 마음은 호수요”는

심리적 차원과 대자연을 연결하고,

“삶이라는 무대”는

살아가는 일과 연극의 세계를 엮는다.

이렇게 두 개의 세계를 엮을 때

단지 두 개의 대상만 엮이는 건 아니다.

두 개의 세계 속 자리를 잡은

두 대상이 엮이는 것인지라

이들 대상이 맺고 있는 관계까지 따라온다.

삶이 무대가 되면

우리는 배우가 되고

누군가는 주연이, 누군가는 조연이,

또 누군가는 악역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비유(메타포)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들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실제 비유는 훨씬 더 복잡하다.

남북간의 대화와 정상회담 제의를

소개팅과 만남에 대한 관계로 풀었을 때

남북과 소개팅이라는 두 영역만 묶인 게 아니라,

남북간의 대화의 양상, 반응의 속도, 심리적 역동 등이

서로 만남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간의 관계에

매핑(사상; mapping)되는 것이다.

즉, 훨씬 복잡한 요소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엮이게 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정치에서의 비유는

필연적으로 윤리적인 측면들을 상정한다.

어떤 대상을 어떻게 엮느냐는

단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두 세계가 엮일 때 발생하는 ‘마찰’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모 정치인이 한 흑인 유학생에게

“연탄색이랑 얼굴색이랑 똑같네”라고 말했을 때

그가 연결시킨 것은 단지 색의 유사성 즉,

피부색과 화석연료 중 하나의 색이 아니었다.

그가 이 두 가지를 엮었을 때

흑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누군가를 ‘검다’고 불렀을 때의 상징적 폭력과

그 말을 듣는 이의 심리적 상처를

동시에 격발시킨 것이다.

노회찬 의원이 ‘비유의 달인’으로 불린 것은

그가 두 개의 적절한 세계를 상정하고

이를 순식간에 연결시켜

현실에 대해 묵직한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편견을 조장하지 않으며

세계를 날카롭고도 따스하게 볼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현실적으로

누구보다 더 깊이 고민하는 정치인이었다.

동시에 언어 그 중에서도

메타포를 공부하는 나에게는

서로 다른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면서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꿰뚫어 보며

그 혜안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타락한 싸구려 메타포들의 시궁창 같은

모 당의 ‘레토릭’과는

절대 비교되지 않을

빛나는 유머의 일침들.

나도 그를 한 가지 메타포로 표현하고 싶다.

“노회찬 의원님,

의원님은 저에게

세상 가장 푸근한 웃음을 지녔지만

그 무엇보다 험한 지형을 헤쳐온

노련한 셰르파였습니다.

당신의 경험은

베이스 캠프와 정상을,

대지와 하늘을 동시에 조망하는

혜안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유쾌했던 당신의 유머는

폭풍 속 절벽에서도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힘이자 희망이 되었습니다.

함께 싸울 수 밖에 없어 슬펐지만

함께 웃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긴 말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이라고 말했다.

언어학에서 ‘여기에서(here)’는

직시표현(deictic expressions) 중 하나다.

직시표현이란 화자와 청자가 처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말이다.

“지금”은 고정된 시간을 가리키지 않는다.

2018년 7월 24일 밤 11시 30분과는

성격이 다른 표현이라는 이야기다.

“여기, 거기, 그때, 지금” 등이 대표적인 직시표현이다.

그는 ‘여기서’라고 말했지만,

그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우리가 그의 글을 언제까지나

바로 지금, 여기에서 현재형으로 읽어 낸다면

그는 “여기서 멈추”었을지라도,

결코 정지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움직이면

그가 명시한 시간의 축도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정당운동의 변방에서

선거때마다 작게나마 무언가를 하면서

고비고비마다 그를 바라보고 또 따라왔다.

그가 마음으로,

뛰어난 지력과 언어로

무엇보다 불의한 세계에 대한 분노와

평범한 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엮었냈던 세계를

오래오래 곁에 두려고 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여기”는

우리가 걷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

언제나 우리의 발걸음보다

한발짝 더 앞에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그의 “여기”는

나의 “거기”가 될 것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그의 자취가 될 것이다.

편히 쉬시길,

그간 만나지 못했던 동지들과

회포를 푸시길 빈다.

당신을 기억하고

계속 걸어가려 한다.

당신이 생전 엮어냈던

수많은 세상의 관계처럼

당신이 꿈꾸었던 세상과 우리가 발딛고 있는 세상을

엮어가면서 말이다.

2018.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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