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잖아,” 혹은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말’

Posted by on Jul 29,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몇주 전 월간 <좋은생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작은 원고를 싣고 싶은데 기억에 남는 어머니의 말씀을 소재로 써달라는 초대의 말씀을 전해 주셨죠. 흔쾌히 그러겠다 승낙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짧지 않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와의 대화를 모아 <어머니와 나>를 내고 지금도 종종 기록하고 있지만 제가 알고 있는 <좋은생각>의 방향에 맞는 어머니의 말씀이 무얼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군요. 저 혹은 어머니에게만 좋은 생각이 아닌 잡지의 모든 독자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그런 좋은 생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책 속에 다 담아내지 못한 문제의식과 다시 만났습니다. 바로 문해력과 글, 그리고 삶의 관계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독서 패턴도 점점 말랑말랑한 자기위안이나 가벼운 일상을 다루는 쪽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고요. 표면적으로 볼 때 한국인의 읽기 능력은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파보면 정작 길고 깊은 글을 읽어내는 능력은 상당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 문제를 짧은 원고에 오롯이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욕심인 줄 알지만 글을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 마지막에 출판사 쇤하이트의 대표이신 Kyungsoo Sohn님께서 소중한 피드백을 주셔서 아래 글이 나왔네요. 역시 짧은 글이 더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더 많은 ‘우리 이야기’가 세상을 감싸안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간에서 함께 ‘우리 이야기’를 만들어 가며 저의 일상을 포근히 안아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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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 잊지 못할 어머니의 말

봄을 선언하듯 벚꽃이 도시를 뒤덮기 시작하던 날, 한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어머니와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을 안겨 드렸다. 표지를 쓰다듬으시며 언제 이럴 시간이 있었느냐고 물으시는 당신의 얼굴이 수줍게 빛났다. 기쁨에 달뜬 어머니를 보며 내 가슴도 함께 뛰었다. 세상도 마음도 제대로 봄날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과 나눈 이야기를 복기하곤 했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승객이 쏟아져 나오길 몇 차례 반복하면 일상의 기억은 글이 되어 있었다. 때로는 눈보라가 치고 무더위가 심술을 부렸지만 기록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다섯 해를 훌쩍 지나 소소하고 따뜻했던 추억은 책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왔다.

어머니와 헤어진 뒤 네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전화가 왔다.

“우야, 책 다 읽었다.”
“아니, 벌써요?”
“응, 승강장에 앉아서 단숨에 읽었지.”
“집에도 안 가시고요? 어찌 그렇게 빨리 읽으셨대요?”
“엄마가 한 말이 그대로 들어 있으니 술술 읽히더라. 다 우리가 한 이야기잖아.”
“아… 그렇죠. 우리 이야기.”

읽기는 단어와의 만남을 넘어선다. 글쓴이의 말을 통해 삶을, 나아가 세상사의 이치를 엮어 내는 일이다. 이같은 능력을 ‘문해력’이라 한다. 독서가 힘겨운 까닭은 문해력을 갖추지 못해서다. 언어뿐 아니라 문화와 사회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만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의 말’을 ‘그대로’ 담은 ‘우리의 이야기’였기에 책을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이런 나의 생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간 책을 쉬이 읽지 못하셨던 건 그저 문해력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삶과 언어를 담은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책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개개인의 지혜가 되지는 못한다. 살던 대로 살겠다는 아집이, 독서를 성적의 도구로 삼는 교육이, 잠깐의 여유마저 허락지 않는 무한경쟁이 책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다. 어머니의 말씀은 여기에 한 가지 숙제를 더한다. 삶을 오롯이 담아낼, 누군가의 가슴을 단숨에 적실 언어를 어떻게 빚을 수 있을까?

단 한 명의 독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좋은생각> 2018년 8월호. 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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