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의 실패: 학습자와 인간 사이에서

1.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교육의 수많은 문제는 학생들을 ‘학습자’라는 범주 안에 가두는 데서 발생한다. 그들이 학습자인 건 맞지만, 학습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이전에 생각하고 느끼고 배고프고 인정받고 싶고 졸립고 화나고 짜증나고 연애하고 싶고 드러눕고 싶은 인간이다.

2.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라는 뿌리깊은 생각은 학습자가 예외 없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는 쉽고 견지하기는 어렵게 만든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은 오로지 교과지식의 습득 때문이라고 전제하는 순간 교육은 어그러져 버리는 것이다.

3. 세상을 알아간다는 건 범주화 능력의 발달을 의미한다. 나와 너, 산 것과 죽은 것, 액체와 고체와 기체, 성별, 국가, 정상과 비정상, 선행과 악행, 개인과 사회 등등을 구분하고 개념화하는 능력 말이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인지와 언어의 발달, 과학개념의 습득이다.

4. 반대로 윤리적, 도덕적 발달은 대개 많은 범주를 가로지르고 파괴하는 과정을 수반한다. 구체적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남과 여 그리고 트랜스젠더,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 정치인과 일반 시민, 노동자와 정치가 등의 상위에 있는 하나의 개념, 즉 ‘인간’으로 이 모든 범주를 무력화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물론 ‘인간’을 넘어서는 개념화도 가능하다. 인간과 동물을 묶고, 인간과 동식물을 묶고, 생물과 미생물을 묶는 식으로의 확장 말이다.

5. 윤리적 힘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과과정은 지식과 인식(awareness)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너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뭔지 아니?’ ‘너는 영단어를 얼마나 외웠니?’ ‘너는 환경의식이 있니?’ ‘너는 인권의식이 있니?’ 지식과 인식은 행동의 출발점이라는 가치를 지니지만, ‘출발점’일 뿐이라는 한계 또한 노정한다.

6. 학습자들을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 혹은 인식으로 초대하는 것만큼 특정지식을 넘어서는 윤리적, 도덕적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학교교육의 책무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 (1) 특정 분야를 더 깊이 알아가는것과 (2) 세계를 더 넓게 바라보는 것이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니 나아가 이 둘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음이 학교교육의 가장 중대한 실패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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