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WHY)의 힘

Posted by on Aug 14, 2018 in 강의노트, 말에 관하여 | No Comments

 

1. 영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는 아이들에게서 보통 “what”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where’와 ‘who’가 그 뒤를 잇는다고 한다.

‘무엇을’, ‘누가’, ‘어디서’는 보통 눈에 보이는 요소다. 하지만 ‘why’는 보이지 않는 요소, 즉 동기(motive)와 의도(intention)에 관한 것이다. Why의 등장과 올바른 사용은 마음이론(theory of mind)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듯하다.

2. ‘why’는 보통 만 2세 직전쯤 나타나서 어른들을 괴롭게 한다고 하는데, 이건 한국어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왜, 왜, 왜” 세례를 받고 짜증 안내본 부모들은 별로 없으리라.)

3. 의문사 중에서 대개 가장 늦게 등장하는 건 ‘when’과 ‘how’인데, 언어학자들은 빈도 외에도 인지적으로 복잡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시간이라는 게 성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개념이지만 아가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사건의 연쇄나 양태를 말하는 ‘어떻게’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분명 what이나 where 혹은 who와 다른 층위의 인지적 복잡성이 있는 것이다.

4. MIT의 Deb Roy 등의 연구가 좀더 진행되면 개별 의문사들의 사용빈도 및 맥락 등을 고려한 체계적 설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5. 언어습득의 맥락을 떠나 ‘왜’가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왜”는 대개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 낸다. 아이들이 ‘왜’라고 질문할 때, 설명하기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때로 자기도 답을 모르거나 숨기고 싶은 걸 들킨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왜”라는 질문을 몇 번 던지다 보면 내 동기의 밑바닥을, 평소에는 생각조차 가지 않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왜”를 몇 번 던지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된다.

“왜”는 힘이 참 센 녀석이다.

(의문사의 등장 단계에 대해서는 Patsy M. Lightbown and Nina Spada. (2013). How Languages are Learned (4th edition). Oxford Handbooks for Language Teachers. Oxford. 10쪽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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