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읽기 과정에 대한 소고: ‘사이’, 바흐친, 주석, 그리고 여정

읽기의 과정은 주어진 문자를 해독하는 일을 훌쩍 뛰어넘는다. 텍스트 이해는 대개 다음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1. 주어진 텍스트를 읽는다.
2. 생략된 텍스트를 (아마도 마음 속으로) 쓴다.
3. 주어진 텍스트와 생략된 텍스트를 비교한다.
4. 이 둘의 관계를 현재 텍스트의 앞뒤 문맥에 비추어 파악한다.

뭔가 복잡해 보이는데, 이런 거다. 아래 트윗을 보자.

“What doesn’t kill you gives you a lot of unhealthy coping mechanisms and a really dark sense of humor” by @mermatriarchy

이 트윗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 이해에도 못미친다. 위에서 밝혔듯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문장의 구조와 단어에 대한 이해를 훌쩍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트윗을 이해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려보자.

1. 주어진 트윗을 읽는다.
2.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떠오르는 생략된 텍스트를 마음 속으로 쓴다. (생략된 텍스트는 글쓴 이의 마음 속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내가 쓰는 텍스트와 그의 마음 속에 있었던 텍스트가 일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3. 본 트윗과 생략된 텍스트를 비교한다.
4. 트윗 자체의 내용과 더불어 이들을 비교한 결과가 바로 이 텍스트의 의미다.

자 그렇다면 위의 2번에서 언급한 ‘생략된 텍스트’의 후보들을 찾아보자. 나는 이들 중 Kelly Clarkson의 “What doesn’t kill you”라는 노래 가사 중 핵심 대목인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를 머릿 속에 써놓았다. 물론 이 노래 가사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입 위에 오르내리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읽기는

(1) 트윗을 읽고
(2) (수많은 이들의 입 위에 올려져 있다가 Kelly Clarkson의 노래 가사 내에 자리잡은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을 떠올리고,
(3)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4) 트윗의 의미와 이 비교의 결과를 중첩시켜 놓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왜 이런 과정이 필요한가? 이 두 텍스트가 서로 조응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지 여부에 따라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숨겨진 문장에 담겨 있는 “stronger”는 아래의 “unhealthy”와 조응하며 “unhealthy”의 수사적 효과를 배가시킨다. 반의적 관계가 문장의 의미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 것이다.

이 배가된 효과는 다시 “dark”가 주는 느낌과 연결된다. Unhealthy와 dark의 유사성은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숨겨진 텍스트 즉, stronger와도 연결된다. 숨겨진 텍스트가 드러난 텍스트와 연결되며 의미의 연쇄적 파장이 일어난다. 여기에는 단절(stronger/unhealthy)도, 연결(unhealthy+dark)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문장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며, 텍스트 읽기가 거듭될 수록 그 수가 급속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시쳇말로 내가 Kelly Clarkson의 노래 대사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운빨’이다. 이게 보이지 않았다면 이 텍스트의 의미는 사뭇 앙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Kelly Clarkson 없이 이 트윗을 읽었을 때 내가 파악한 의미는 트윗을 쓴 이가 의도한 바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문장을 떠올릴 수 있는 ‘운’의 단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동일한 작가 – 어, 이거 지난 번에 이 사람이 한 트윗에서 연결되는데?
(2) 어휘의 중첩 – 음, OO라는 작가도 이 어휘 자주 쓰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나?
(3) 비슷한 문법 형식 – Mistakes makes sucess라니 나는 Practice makes perfect가 생각나는군.
(4) 비슷한 의미 – 이거랑 비슷한 속담엔 OOO가 있지.
(5) 비슷한 운율이나 발음 – 어 이거 발음이 OO랑 비슷하네.
(6) 최근의 유행어 – 요즘 개그맨 누가 이거 맨날 하는데, 그땐 OOO라고 하지.

인간의 패턴 인식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서 그 어떤 요소라도 걸리기만 하면 관련된 데이터베이스를 순식간에 찾아내 읽기 과정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다른 표현 혹은 사건애 대한 기억을 발생시키는 요인(trigger)은 그야말로 오만가지인 것이다.

읽기에 있어 해당 텍스트만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결된 수많은 잠재적 텍스트가 동원될 수 있다는 점은 바흐친의 텍스트관과도 맞닿아 있다.

그의 생각을 빌려 말하자면 어떤 문장도 독립적이지 않으며 특정한 컨텍스트에서 누군가의 입에 올려졌던 말을 가져와 자신(만)의 ‘엑센트’를 부여한 것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세계에 떠돌고 있는 수많은 목소리가 내 입안에 들어왔다가 튕겨 나간 메아리일 뿐이라는 말이다.(그래서 바로 위에 “만”에 괄호를 넣었다. 세상에 나만의 말이 있긴 한건가?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의 입에서 나올 새로운 ‘액센트’는 다음 문장 쯤 될 것 같다.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ange to death.”

이런 관점에서 모든 텍스트 읽기는 생략된 혹은 잠재적 텍스트를 새로 쓰고, 이 두 가지를 비교하여 자신만의 주석(annotation)을 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읽기는 내 앞에 있는 문자들로 향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문자와 그 문자를 낳은 수많은 문자들의 사이로 향한다.

자 이 트윗이 나에게 한 일을 정리해 보자.

1. What doesn’t kill you gives you a lot of unhealthy coping mechanisms and a really dark sense of humor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은 일을 겪고 나면 갖가지 건강하지 못한 대응기제들과 진짜 어두운 유머 감각을 갖게 되지.)

2.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가 생각나는군. 죽을 만큼 힘들진 않는 일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진다고 하더라고.

3. 둘을 비교하니 재미있군. Stronger가 아니라 unhealthy네. 그러면 dark해지지. dark는 마음이 dark할 수도 있지만 유머감각에도 곧잘 쓰이지.

4.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ange to death 근데 내 생각엔 죽지 않을 만큼 힘든 일을 당하고 나면 죽도록 이상해져.

이렇게 어떤 텍스트가 그에게서 나로 왔고, 나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고, 또 다른 누군가로 향한다. 새로운 여정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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