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기술지, 대화분석, 그리고 ‘위력’의 존재

Posted by on Aug 28, 2018 in 말에 관하여, 사회문화이론, 일상 | No Comments

 

그저 학문적 논쟁이라 생각했던 지점이 현실 속 갑론을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법의 영역에서.

1. 언어를 주 매개로 한 의사소통분석에 있어 양 극단의 경향이 존재한다. 하나는 인류학에 기반을 둔 문화기술지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학 전통에서 강세를 보이는 대화분석 접근이다. (아래에서는 이 두 거대한 분야를 매우 함축적으로 다루므로 독자들께서는 엄밀한 학문적 논의의 칼날을 적용하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2. 문화기술지(ethnography)는 특정 사회현상을 둘러싼 맥락적, 역사적 요소들을 강조한다. 현상의 시간적 배후 그리고 상황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다각도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다. 해당 현상이 발생한 커뮤니티의 관습과 태도, 의례, 언어습관, 주요 소통채널 등 다양한 것들이 분석의 주요 자료가 된다. 이런 관점을 잘 드러내는 용어는 아마도 클리포드 기어츠의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일 것이다. 현상은 얇아보여도 그것을 배태한 세계는 두껍다. 따라서 우리의 기술 또한 두꺼워야만 한다!

3. 이에 비해 대화분석(conversation analysis)은 대화의 전개, 한 마디 한 마디의 주고받음이 사회의 질서를 이루는 방식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1960년대 하비 색스의 연구에서 발원한 연구 흐름은 사회학과 응용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의 미시적 접근(micro-analytic approach)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방법론의 관점에서 대화분석의 제1원리는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것은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일 것이다. 모든 것은 데이터 내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4. 대화 참가자들 사이의 권력관계는 특정 대화 내에서 어떻게 전개되는가? 대화를 아무리 돌려보고 분석해도 권력의 지층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들은 해당 대화 상황에서 ‘평등하게’ 대화했다고 할 수 있는가? 트라우마로 수년간 고통받아온 사람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트라우마를 겪어온 자아’가 드러나지 않았음은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가? 제3자가 그것을 확정하는 것이 가능한가? 당사자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인가? 그것들이 엇갈린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

5. 이런 질문에 대하여 문화기술지적 연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생애사적 증거를 최대한 동원하여 설명하려 들 것이다. 물론 무조건 ‘갖다 붙이는’ 설명은 곤란하다. 그래서 그들은 삼각검증(triangulation)이라는 절차를 둔다. 수집된 자료들 사이의 패턴, 일관성, 함께 가리키는 바 등을 차분하고도 엄밀하게 고려하는 것이다.

6. 반면 대화분석 연구자들은 대화상황 자체에 집중하려 들 것이다. 대화가 말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말의 강세가, 침묵이, 길게 늘어뺀 억양이, 어조가, 속도가, 쓰인 단어들이 말해주는 바에 집중할 것이다. 거기에서 그 어떤 결론도 도출될 수 없다면 ‘외부에서’ 다양한 증거들을 가져오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학생과 교사의 대화가 100% 사회가 정해놓은 학생/교사라는 역할 하에서 일어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대학원 수업 시간 중에 문화기술지적 연구경향과 대화분석 접근법 사이의 세계관 차이가 논쟁의 주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둘 사이의 대립 상황에서 칼로 무 베듯 정답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자의 성향에 따라 특정 방법론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어떤 쪽에서 논쟁에 참가했을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타임라인을 읽어오신 분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8. 아침에 두 개의 상반된 칼럼을 접했다. 둘이 너무나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서 같은 우주 안에 있다고 하기 힘들 정도였다. 왜 그런지 직접 읽고 판단하시기를.

안희정 무죄 판결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 (교수신문)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2527

위력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한국일보)
http://hankookilbo.com/v/741e6fbcc3c14b979d8cd1a40fb3aeb6

9. 두 칼럼의 지향은 대화분석과 문화기술지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전자가 ‘드러난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려 한다면 후자는 ‘드러나지 않은 것’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니 정말 그런가?

10. 드러난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책무는 (1) 최대한 많이 드러내는 성실함 그리고 (2) 드러난 바를 철저히 분석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전자의 칼럼에서 그런 성실함이나 노력은 잘 읽히지 않는다.

11. 후자의 칼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약자들은 위력의 냄새를 귀신처럼 맡는다”라고 생각한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아니 냄새를 맡아야만 할 상황에 처한 이들의 세계와 그런 냄새를 맡지 않아도, 아니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런 냄새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12. 다시 대학원 수업시간을 떠올린다. 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 어떤 자세와 방법론을 견지할 것인가?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총체적 세계를 해석하고 있는가, 조각조각 데이터에 현미경을 갖다대고 있는가. 혹 내가 가진 조각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단번에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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