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어로, 쓰는가

1. 왜 쓰는가

Nadine Gordimer는 “Writing is making sense of life.”라는 말을 했다. “쓰기는 삶을 이해하는 일”, 말장난을 좀 해보자면 “쓰기는 삶을 재료로 의미를 만드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Gordimer의 원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겐 이 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우린 그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경험을 한다. 하지만 이를 기록하지 않으면 이내 흩어져 버린다. 순간 순간의 의미는 쉬이 망각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흐름을 ‘멈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작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다. 빈 공간 위에 글자를 하나 하나 새기는 동안 잠시나마 세월의 격랑에 덜 휩쓸린다. 성찰하고 기억할 수 여지가, 세찬 바람 속에서도 고요한 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경험의 측면들이 드러나고 뭉개진 생각의 결이 분명해진다. 글쓰기의 과정은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고 이것이 다시 글쓰기의 양분이 된다. 글쓰기는 지나간 것들의 반추임과 동시에 새로 올 것의 창조다. 쓰기 전까지는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나의 의식 위로 떠오른다.

이런 글쓰기의 특성은 가르치기 전까지는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과 많이 닮았다. 수업을 하다가 보면 내가 정확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떤 내용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하는지 알게 된다. 또 수업을 통해 나 자신이 더 많이 배우기도 한다. 가르치는 일은 부족함에 대한 깊은 깨달음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배움의 지평을 열어 젖힌다.

2. 왜 영어로 쓰는가

그런데 우리 삶에서 영어로 글을 쓴다는 게 그리 중요한가?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여기 영어실력, 그 중에서도 영작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분들은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사망한 Stephen Covey의 책에 소개되어 널리 쓰였던 중요성/긴급성 “Importance/Urgency” 2X2 매트릭스를 떠올려 보자. 여러 분들께 영어 글쓰기는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즉,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지만 안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일이다. 안해도 지장 없는 일은 늘 다른 일에 우선 순위를 내준다. 수업과 잡무, 친구들과의 약속, 그 외 이런 저런 개인사가 치고 들어오면 미루다 못해 까맣게 잊게 되는 것이다.

한국은 영어글쓰기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영어는 일상에서 쓸 일이 없다. 영어가 외국어인(EFL;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상황인 것이다. 이는 영어를 제2언어로 활용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제2언어로서의 영어(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영작을 배우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교재를 정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써야 할 이유를 찾고, 동기를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좋은 교재” “좋은 학원”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분이 아니라면 단기 공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아니, 영작문을 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 변함없이 지속된다고 하는 것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왜 영어로 글을 쓰려 하는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영어 글쓰기를 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영작문을 공부하려는 게 학점을 따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교실 밖에서 영어로 의미를 만드는 일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어떤 경우라도 Gordimer의 이야기처럼 삶을 좀더 깊고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쓰기가 아니라면 이내 영어 글쓰기를 할 이유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학기 여러분과 함께 이 고민을 함께 해보고 싶다.

3. 왜 영작문 수업을 듣는가

몇년 전 모 교육대학원 영어쓰기 강의록의 일부다.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어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데 ‘왜’라는 질문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학부생들의 경우 ‘필수 과목이라서’, ‘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혹시 관련분야로 갈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등의 대답이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반응은 자연스럽다.

문화적 자본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구별하는 기제로서 영어 특히 영어 글쓰기의 역할이 분명 존재하며, “영어공부 방기 = 미래에 대한 불안 가중”이라는 등식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그닥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금요일 오전 수업에 피곤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친구들이 영어로 글을 써야만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내가 다다르는 결론은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뭐 이런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결론이 있나 싶지만 요즘 들어 학생들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곱씹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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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를 학생들에게 질문하려 했는데
왜 가르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묻고 있다.

#영어로글쓰기
#삶을위한영어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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