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우리 마음 속의 상대평가제

주변에서도 볼 수 있듯 외국어를 공부하는 학습자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부족하다고(deficient)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준점은 대개 네이티브 스피커입니다. 원어민과 비교할 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모자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가 지적하고 있는 바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10여 년 영어 공부를 한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영어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니 대다수가 “못한다”, “안된다”,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답을 해주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요?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봅시다.

여기 10년 간 첼로를 배운 100여 명의 학생이 있습니다. 동일한 질문이 주어집니다.

“자신의 첼로 연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때 압도적인 다수가 “저는 첼로를 못합니다”나 “연주가 안됩니다”라고 대답할까요? 그런 대답도 나올 수 있지만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 첼로 연주자가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이 사고실험을 통해 영어를 대하는 태도와 첼로 등 악기 연주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다를 것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 영어를 배울 때엔 오디오가 아닌 발음기호로 단어의 발음을 익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꽝스런 광경이지만 발음은 반드시 소리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지는 않았죠. 그저 가끔 카세트 테이프로 발음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지, 실제 발음을 통한 말하기, 듣기 교수학습을 고집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원어민 같은 발음’ 자체가 희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영어를 발음기호로 익히던 시절이었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거나 영어권 국가에 장기간 체류하는 것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혀만 좀 굴려도 ‘영어 좀 한다’ 소리를 듣는 시절이었지요.

이후 파닉스 등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오디오 교재가 널리 보급되면서 시쳇말로 ‘발음이 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인터넷 상의 풍부한 멀티미디어 자료 또한 이런 변화에 한몫 했지요. 이제 발음이 좀 좋다는 평가가 영어실력을 확실히 돋보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 되었습니다. 흔해지니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 되었달까요.

이같은 흐름과 함께 영어교육의 주요 키워드로 자리잡은 것이 바로 ‘다독(extensive reading)’입니다. 많은 책을 읽어내면서 이를 기반으로 영어를 배우는 방식이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얼마나 어려운 책을 읽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습니다. ‘영어 좀 한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발음은 기본이고 다양한 읽기 경험이 더해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디베이트와 글쓰기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이 두 영역은 정확한 발음이나 다독을 넘어서는 상위 능력이라는 의견입니다. 일상 회화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사실을 적절히 섞어 조리있게 말할 수 있는 논쟁 능력, 다양한 글을 써낼 수 있는 영작문 능력이야말로 상위 영어학습자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식의 홍보를 종종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영어교육계가 점점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런 요구에 부응하여 많은 이들이 영어교육에 대한 경제적, 시간적 투자를 늘려 왔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안된다’는 심리는 점점 더 심화되는 느낌입니다. 자신의 실력 상승에 대한 만족은 없고, 주변에서 보고 듣는 바에 휘둘리긴 쉬워졌습니다.

성인 영어교육에서도 이런 경향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토익 900점은 나름 괜찮은 점수였습니다. “걔 토익 900점을 넘는다면서?”가 부러움의 질문이 되던 시절이었지요. 하지만 최근 토익점수 900점은 그때만큼 큰 자랑이 아닙니다. 분명 점수는 그대로인데 별게 아닌 점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영어능력의 대명사였던 토익점수의 무게 또한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제 의사소통능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토익으로 대표되는 능력을 한껏 쌓아왔더니 이젠 그게 별 의미 없다는 식의 평이 쏟아집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영어가 소통과 향유의 도구라기 보다는 사회경제적 구별(distinction)의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영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보다는 영어를 통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가가 중요한 사회인 것이죠.

저는 이와 같은 현상을 “전국민의 영어 상대평가제”라고 부릅니다. 삶에서 영어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이를 향유하기 보다는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고 투자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만인의 영어실력을 줄세우려는 경향을 쌓아갑니다. 물론 자신 또한 늘 그 줄 어딘가에 서 있습니다.

삶의 터전을 바꾸지 않는 한 이 대열에서 훌쩍 이탈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줄세우지 않는 영어공부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가꾸는 여정, 바로 지금 소박한 계획을 세워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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