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교육을 공부하는 이유: 에필로그를 대신하며

언어교육을 공부하는 이유: 에필로그를 대신하며

짧지 않은 시간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 대단할 것은 없지만 제 삶의 큰 부분을 이룬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언어학습의 메커니즘을 밝혀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외국어를 배우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일. 언어와 사고, 나아가 사회의 관계를 정확히 그려내는 일. 인지언어학, 심리언어학,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언어교육 등의 여러 응용 분야들을 꿰어 가치있는 지식을 만들어 내는 작업. 이들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지닙니다. 하지만 영어의 힘이 막강한 한국사회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또 다른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영어교육 관련 연구를 비롯한 언어교육학의 목표 중 하나가 언어와 소통에 대한 새로운 미학의 창조라고 믿습니다. “새로운 미학의 창조”라 함은 ‘멋진 발음’, ‘네이티브 영어’, ‘유창한 언어’ 등에 관해 의심을 품고 우리가 아름답다 여기는 언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외국어를 통한 소통을 이해함에 있어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미학”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솔직히 알아듣기 쉽게 영어를 구사하면 좋습니다. ‘표준어’를 시원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편합니다. 싱가포르 영어보다는 이른바 ‘본토영어’에 집중이 더 잘 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소위 ‘표준’ 한국어 발음을 통해 모국어를 습득했고, 미국영어를 기준으로 영어를 공부해 왔기에 자연스럽게 ‘표준어’와 ‘표준영어’의 억양과 발음이 스며들었습니다. 제 몸에 새겨진 언어습득과 학습의 역사를 하루 아침에 제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몸이, 혀와 귀가 이미 거기에 깊이 길들여져 그런 언어들을 ‘덜 피곤하다’고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누구도 ‘비표준’의 ‘이상한’ 발음을 일부러 구사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불리할 게 뻔한 비원어민 문법을 고집하진 않습니다. 인간의 발음이나 문법능력 자체에 우열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생을 한 줄로 세울 수 없듯 말입니다. 다만 그 언어를 우상화하거나 멸시하거나 소외시키는 우리의 마음에 이 시대의 명암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영어를 할 때 ‘김치 발음’이 나는 것은 뼛속까지 한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틀린 발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의 역사와 정체성이 영어발음이라는 매개로 표현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제 영어 발음이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지요. 그것은 저의 한계이지만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갖고 있는 발음은 배우는 주체로서 저 자신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발음으로 저를 판단하시려 하는 분은 제 생애사 전체를 판단하고 계신 겁니다. 그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분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보면 제 발음이 막 좋았던 적은 없습니다. 종종 마음에 들지 않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의 혀를 통해 사람들과, 또 세계와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제 억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여러분께 이 우주상에 하나밖에 없는 발음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제 발음이 몇몇 분들께는 ‘외국의/낯선 발음’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너무나도 친숙합니다. 그렇습니다. 제 발음은 바로 저 자신입니다.

한국어의 영향을 받은 영어발음과 문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영어를 배워온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나를 키워낸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습득하게 된 내 모국어의 체계와, 그 모국어 발음에 최적화된 제 혀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사정없이 폄하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말과 함께 살아온 제 삶의 총체를 부정하는 일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발음이 ‘이상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있고, ‘절대 못 알아들을’ 것 같은 악센트에도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몸부림이 숨어 있습니다. 유창한 발음으로 텅빈 과장의 말을 하기도 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뻔뻔함과 무례함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언어의 겉과 속이 불일치하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봅니다.

이런 생각에 터해 외국어를 통한 소통에서 새로운 미감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발음이 안좋아서 영어를 못알아 들을 때 ‘얘 발음이 왜이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텐데, 대화가 길어질 것 같긴 하지만 이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며 차근 차근 대화를 이끌어가려는 노력이 아름답습니다.

특정 외국어를 하나도 몰라서 손짓 발짓을 통해 의사소통하려는 사람 앞에서, ‘아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서 전달하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하면 상대의 의미가 좀더 명확해질까?’라고 궁리하는 태도가 아름답습니다.

‘빠다발음’과 백인 앵커 목소리에 쉽사리 아름다움을 부여하지 않고, 의미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지난한 과정에 감동하는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사투리를, 싱가포르와 아일랜드와 동남아와 한국의 영어를 ‘비표준’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다양성과 개성을 전달할 수 있는 문화적 자산으로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아름답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외국어를 쉽게 폄하하거나 이상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날로 성장하는 타인의 언어를 응원하며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아름답습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특권의 부여과 구별짓기의 도구로서의 영어를 넘어 삶을 풍성케 하는 가능성의 언어로서의 영어를 키워가는 일입니다. 사람들을 쉬이 줄세워 사회적 자본을 불균등하게 분배하는 영어의 힘에 저항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영어를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성찰과 소통, 연대를 위한 우리 삶의 언어”로 바꾸어 나갔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진 아름다움의 감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일상에 뿌리박은 단단하고도 재미난 영어학습의 방법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삶과 세계를 상상하는 힘이 되는 영어가, 우리 모두를 성장시키는 영어교육의 문화가 숨쉬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학교에서, 동네에서, 도서관에서, 스터디 모임에서, 그리고 어둔 밤 홀로 공부하는 여러분들의 컴퓨터와 노트 속에서 삶을 위한 영어공부를 실천하는 재미난 실험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저 또한 계속 공부하고 궁리하며 나누겠습니다.

삶을위한 영어공부,
이제 시작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