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티브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몇 시간이나 공부해야 네이티브처럼 말하고 쓸 수 있나요?”

 

영작문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맨 끝자리에 앉았던 학생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뜸 이 질문을 던지더군요.

 

“좋은 질문입니다. 한두 마디로 정리하긴 힘들 것 같지만 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네이티브처럼”이라는 말을 정의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사실 이걸 정의하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영어의 종류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가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하지만 이것까지 생각하고 질문하신 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우리나라에서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한다고 하면 보통 미국이나 영국영어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먼저 생각하는 게 발음이죠.

 

그들처럼 발음을 하려고 한다면 아주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워야 할 겁니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에 배우는 것이 좋겠고, 아무리 늦어도 사춘기 이전에 배워야 하죠. 하지만 발음을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발음이 중요하긴 하지만 언어를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 중 하나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원어민같은 발음을 갖는 게 아니라 자기 발음을 통해 효율적이며 의미있는 소통을 할 수 있는가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완벽한 원어민 발음’이라는 말에 숨어있는 편견을 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완벽한’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하나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은, 정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네이티브의 발음과 같다(same)”는 뜻을 담고 있지요. 하지만 잘 들여다 보면 ‘완벽’에는 우월함(superiority)의 가치 또한 담고 있습니다. 원어민의 발음은 완벽하고 나의 발음은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후자의 의미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왜 이 세상의 수많은 발음을 완벽한 발음과 모자란 발음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야 할까요? 아직까지 저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쓰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이 수업이 영작문 수업이니 말이죠. 네이티브처럼 작문을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우선 철자나 문법적인 오류를 덜 범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왜 ‘덜 범하는 것’이라고 했을까요? 원어민들도 종종 문법적인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오류를 줄여가려는 노력은 중요하고, 이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일률적으로 “몇 시간을 노력하면 완벽한 문장을 쓸 수 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정한 수준이 넘어가면 영어를 공부해 온 누적시간 보다는 하나의 글에 대한 퇴고가 글의 질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십 년 모국어로 글을 써온 작가들조차 글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여러분들이 오류가 많은 글을 쓰게 되는 건 영어공부의 세월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고쳐쓰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일 공산이 크다는 말입니다.

 

한편 ‘완벽한 문장 쓰기’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문장을 생산해 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견을 입체적이면서도 엄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흠없는 문장이라는 신기루를 좇기 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쓰여질 가치가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응용언어학을 공부하고 영어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멋진 글을 쓴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련된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도 하고, 해당 학문분야의 논문을 영어로 쓰기도 합니다. 미국인이나 영국인 중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극소수일 겁니다. 영어교육이나 응용언어학을 전공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저는 그들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할 수 있나요? 비원어민인 제가 원어민들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요?

 

생각하면 할수록 저와 원어민을 비교하는 게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제 삶에서 중요한 일들을 영어로 할 수 있을만큼 훈련을 받았고, 그럭저럭 해내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족합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를 열심히 공부하시고 그걸 하시면 됩니다. 굳이 원어민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깁니다.

 

그래도 비교를 꼭 하셔야겠다면 이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많은 원어민들보다 낫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경우 외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그들은 우리보다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영어밖에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데에다가 영어를 ‘더’ 하는 것이죠. 그들은 하나를 하는데 여러분들은 둘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지요.

 

세상 모든 사람을 줄세우고 영어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을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모양새는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길 원하는 삶에서 어떤 영어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길에 정진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영어를 하게 될 겁니다. 그걸로 족하지요. 네이티브처럼 영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으로서, 여러분의 삶의 영어를 구사할 방법을 강구하십시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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