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을 위한 근거이론 이야기 (2)

Posted by on Oct 15, 2018 in 강의노트, 수업자료, 집필 | No Comments

 

1. 자 그러면 누군가의 말을, 텍스트를 읽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좀더 말씀을 드릴 차례네요. 근거이론의 제1 과제는 결국 언어를 해석하고 이해하여 이론을 생산하는 것이니까요.

2.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개념적으로 보았을 때 어떤 말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근거이론에서 ‘말’은 한두 단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길이가 되는 대화나 인터뷰, 텍스트를 의미하므로 이후에는 ‘담화(discourse)’라는 용어를 함께 쓰도록 하겠습니다.

3. 담화를 이해하는 데는 크게 내재적인 방식과 외재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학습 전략에 대한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진술을 20분 간 듣고 녹음하였고, 이걸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전사(transcription)를 했다고 가정해 보죠.

전사된 담화를 이해하는 외재적 방법은 여러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다양한 영어학습 전략에 대한 담론체계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저명한 학습전략 이론가들의 가설, 그들이 제시한 개념, 여러분들이 영어학습 전략과 관련하여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바, 책에서 읽었던 지식,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들을 담화에 적용하여 인터뷰이가 말한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외재적 이해방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해당 인터뷰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한 근거들이 해당 인터뷰의 외부에 존재한다는 믿음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4. 이를 “According to”라는 표현에 넣어 생각해 봅시다. 위의 ‘외재적’ 방법은 “According to some authoritative, reliable, well-established external sources, the interview means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 하지만 해당 담화를 내재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According to 다음에 텍스트 자신이 등장하는 거죠. “According to the text, it means …”라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번에 살펴보았듯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According to the text, it means what the text says.”라는 식의 해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액면가(face value)는 텍스트의 표층을 보여줄 뿐 심층에 있는 사고의 지형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6. 텍스트의 심층이 무얼 의미하는지 좀더 살펴보기 위해 간단한 예를 살펴 봅시다.

“그날 선물을 받아서 참 좋았어요.”

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선물=좋은 것”이 됩니다. 하지만 이 문장 앞뒤에 나오는 문맥에서 “선물=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꼭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터뷰이가 “참 좋았어요. 하지만~”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할 수도 있고, 인터뷰의 후반부에서 다른 선물 이야기를 할 때 위 문장의 의미가 약화되거나 부정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이라는 연결어가, 다른 선물의 예시가 이 문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7. “선물”이라는 단어의 의미 또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 선물은 순전한 마음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의 호의를 사기 위한 전략적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치밀한 심리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선물을 상대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한 ‘뇌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은근한 압박을 넣는 수단으로 쓸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선물’이 이들 중 어떤 의미에 가까운지는 저 문장 하나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른 말들과의 연관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면 깊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물’의 의미는 사전적 정의나 연구자의 직관 혹은 상식적인 뜻이 아니라 해당 인터뷰이의 진술 속에서 확정되어야 합니다. 한 단어의 의미가 이 텍스트의 외부(사전의 뜻, 대중들의 인식)에 있해 정해진다기 보다는 해당 인터뷰의 여러 요소 사이의 관계에 따라 도출됩니다. 이런 면에서 해당 어휘의 의미는 ‘내재적’인 방식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8. 여기에서는 ‘선물’이라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의 말은 많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복잡다단한 의미망을 이룹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말하는 사람의 내면은 논리정연하고 명확하며 완결된 언어로 세상에 뛰쳐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은 의식의 구조를, 의미의 네트워크를, 사건과 상황, 조건과 상호작용 등의 요소들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말의 심층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9. 말씀드렸듯이 텍스트의 의미를 외재적인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도, 내재적인 방식으로만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의미도 독립적이며 탈맥락적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현상의 심층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외재적 담론에 의존하는가, 내재적 읽기에 더 방점을 찍는가는 분명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10. 근거이론에 들어가기 위한 워밍업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이게 다는 아니거든요. ^^ 이제 본격적으로 근거이론의 배경과 의미, 실행방식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학부생을위한근거이론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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