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부,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되기

영어공부,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되기

초등학생은 대개 흉내내기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만화체 따라 그리기나 연예인 성대모사, 아이돌 댄스 카피는 기본이고, 선생님이나 친구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대화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입니다. 유행어에 한번 꽂히면 몇 달을 쓰기도 하지요.

신기해 보이는 것이나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따라해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엄청난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밈(meme)의 변함없는 인기는 이를 방증합니다. 우리말로는 ‘짤’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밈 현상은 우리 안의 ‘따라쟁이’ 본능을 잘 보여주지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 모방욕구는 경계의 대상이 됩니다. 남들 앞에서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게 멋적기도 하거니와 혼자 있을 때도 쑥쓰러운 느낌입니다. 저 또한 중고생 시절 “왜 남들 말을 이렇게 열심히 따라해야 해? 우리말도 아닌 꼬부랑 발음을 익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똥고집이었습니다.

모방의 욕구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그 무엇보다 절실한 외국어공부에서 훌륭한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학습이 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배우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모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문장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흉내냄으로써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앵무새가 아니라 배우가 되어보는 것이지요.

모방을 자기만의 색깔로 바꾸어 낸 영어공부의 사례로 “영국 방언 모방의 달인”으로 불리는 <Korean Billy>를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동경하는,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 동경하도록 교육받는 원어민은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하며 모든 면에서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idealized native speaker)입니다. 그래서 싱가포르 영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앨러배마 등의 지역 방언을 듣고도 ‘발음이 이상하다’고 느끼지요. 제가 수업시간에 “원어민들도 자라나면서 소유격 its를 it’s로 잘못 쓰는 경우가 꽤 많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원어민인데 그걸 왜 틀리죠?”라고 질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어 내에도 다양한 방언이 존재하며, 한국어 원어민 화자도 말실수를 하고 어색한 문장을 쓰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Korean Billy는 이 모델과 반대의 지점에서 특정 지역, 계층, 문화를 타겟으로 언어학습을 진행하였습니다. 영국영어의 매력에 빠진 그는 영국의 다양한 방언을 타겟으로 공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말에 대입해 보면 한 외국인이 소위 ‘표준어’를 고집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방언을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한 셈입니다. 이런 신선한 시도는 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BBC의 눈에 띄어 방송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사회는 아이들에게 개성있는 캐릭터가 되어보라 요구하지 않습니다. 특정 방언에 대한 관심, 풍부한 감정표현,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를 꿈꾸기에는 표준의 힘이 너무나 강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의 유일하게 주어진 배역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미권 중산층 백인의 말투를 지닌 엘리트입니다. 어쩌면 연기를 배우는 사람에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리고 무엇보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역할만을 강요하는 셈입니다.

십여 년 전 직장 선배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영어교육 업계에서 나쁘지 않은 직장이었지만 표준화된 커리큘럼과 학습법으로 진짜 말을 가르치긴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미국영어’나 ‘영국영어’가 아니라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Listen and Repeat(듣고 따라하기)를 생각없이 반복하는 앵무새가 아니라 ‘꼬마 연기자’로서 다른 삶을 동경하며 영어를 배웠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닿을 수 없는 네이티브라는 환상의 고지를 정복하려는 등반가 아니라, 이 동네 저 동네로 난 작은 골목길을 순례하며 진짜 사람들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여행자였다면 어땠을까요. 그저 영국인 Billy가 아니라 Korean Billy로,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내가 닿으려 하는 언어와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보려 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왜 그토록 오랜 시간 ‘이상화된 원어민 화자’의 그늘에서 슬퍼하는 자신을 방치했을까요?

‘세계를 탐험하는 배우’로 저를 이끌어 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좀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랬다면 허깨비같은 네이티브를 좇기보다는 정성을 다해 누군가가 되어보는 ‘배우’로서 공부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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