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각흉각각

Posted by on Nov 2, 2018 in 단상, 일상, 집필 | No Comments

“사람관계에 대해 외할머니가 늘 하던 말이 있어.”
“어떤 말씀이셨는데요?”
“정각각흉각각이라고…”
“네 뭐요??”
“정.각.각. 흉.각.각.”
“정각각 흉각각이요?”
“응. 정은 정대로, 흉은 흉대로. 그래서 정 각각, 흉 각각.”
“아하. 정이랑 흉을 따로 생각하라는 뜻인가요?”
“그렇지. 사람이 오래 만나다 보면 흉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
“그렇죠.”
“근데 흉이 좀 생겼다고 그걸 가지고 정을 덮어버리면 사람을 못만난다고. 관계가 오래 못간다고. 그러니 정각각흉각각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지.”
“어떤 뜻인지 알 거 같아요. 정이랑 흉이랑 섞지 말라…”
“성경에도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말이 있잖아. 생각해 보면 그거랑도 통하는 면도 있지.”
“좋은 말인 거 같긴 한데 그게 어디 쉬울까요. 마음에 안드는 일 하는 사람이면 솔직히 미워보이잖아요.”
“그거야 당연히 그렇지. 그러니까 ‘정각각흉각각’이라는 게 더 필요한 거 같아.”
“관계에 있어서 답없고 끝없는 숙제인 것 같아요.”

외할머니의 ‘정각각흉각각’은 둘 사이에 ‘파티션’을 치는 일의 중요성을강조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면 정과 흉이 섞였을 때 늘상 정이 힘을 잃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의 밝은 면,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면만을 받아들여 왔던 것 같다.

물론 정을 지켜야 할 절대적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떠나보내야 할 때를 아는 지혜 또한 필요하다.

다만 내가 좀더 단단한 그릇이 되어 누군가의 정도 흉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불의와 타협하는 일과 ‘정각각흉각각’을 분별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나 또한 누구못지 않은 흉 투성이의 인간이니 말이다.

#어머니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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