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Posted by on Nov 3,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 No Comments

적지 않은 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반감을 보입니다. 종교와 신념에 기반한 병역거부가 ‘양심적’이라면 군대에 갔다 온 자신은 ‘비양심적’이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논쟁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럴 능력도 되지 않고요. 다만 제가 ‘양심적’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많은 분들은 이해를 못하시겠지만 (그리고 저 또한 조금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지만) 저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용어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행위와 그 행위의 주체에 주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양심에 기반해서 결단을 내렸을 거야’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태양 님의 병역거부 이후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호와의 증인을 포함한 몇몇 병역거부자들을 멀지 않은 곳에서 만났고, 병역거부 운동을 활발히 하는 이들과 대화할 기회 또한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 병역거부 사례를 접하면서 그들의 행동이 진실한 마음과 평화에 대한 신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념이나 용어가 아니라 한사람 한사람의 구체적 삶으로 병역거부를 접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들의 ‘양심’이 그들의 행동을 이끌었음을 큰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제가 깨달은 것은 ‘양심’이 다양할 수 있으며, 그러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더욱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양심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이 우리사회에 축복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들의 행위를 ‘양심적 병역거부’라고 부르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위를 양심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제가 비양심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이 사회가 포용할 수 있는 양심의 범위가 확장되는 것 뿐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양심’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기를 마다 않는 그들에게 박수를 쳐야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의 정신이 살아 숨쉴 수 있는 사상의 공간을 넓혀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사회가 어떤 용어를 택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양심의 최전선에서 양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힘써온 분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비양심적인 우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더 큰 양심을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게 왜 양심이냐’라는 질문보다는 ‘여태껏 왜 우린 그 정도 양심밖에 가지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이 더욱 절실합니다. ‘그럼 나는 비양심적인가?’보다는 ‘나 또한 미약하게나마 양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라는 질문이 훨씬 생산적입니다. 적어도 제겐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넓고 깊어진 이 사회의 양심의 생태계가 벅차게 반갑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양심적입니다. ‘거짓양심’을 판단하는 것, 병역거부자의 선택에 따른 길을 열어주는 것은 법과 제도의 몫입니다. 사상과 제도는 이렇게 조금씩 나아갑니다. 그 앞에는 자신의 양심을 꺾지 않았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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