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세 가지 차원에 관하여.

Posted by on Nov 9, 2018 in 단상, 말에 관하여, 일상, 집필 | No Comments

먼저 대화의 일반적인 의미다. 네이버 사전에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라 풀이되어 있으며, 한자로는 “對話”로 표기된다. 대화對話에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말들이 서로에게 날아가고 날아든다. 대화참여자 A와 B는 개인으로 표상된다. 이 개념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자주 사용되는 A <-> B 도식이 적당할 것이다.

두 번째는 대화代話라고 표기해야 할만한 측면이다. 대신해서 말한다는 뜻.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는 나와 너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나의 역할과 너의 역할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저기 보이는 저 분은 <보험영업원>으로 <고객>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선생>의 입장에서 <학생>에게 이야기한다.

인지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사회적 역할 속에서, 혹은 사회가 정해준 역할을 대신해서 서로에게 이야기한다. 대화 참여자 A와 B는 사회적 역할 A’와 B’가 자신을 실현하는 통로다. 구조는 ‘에이전트’를 통해 세계에 등장한다. A’-A<->B-B’ 정도로 도식화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대화大話라고 부를만한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의 대화對話와는 다르게, 방향성이 없다. 나의 말이 너에게로 향하거나, 너의 말이 나에게로 향하지 않는다. 너와 나는 서로를 도와 대화大話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H와 O는 각각의 특성이 있지만 H2O가 될 때는 본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나와 너는 각자 말하는 것 같지만 속에서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 즉, 대화大話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A와 B로 존재했던 사람들이 이야기 속에서 C가 된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생성되는 것이다. A+B=C (C>A+B) 가 되는 셈이다.

카페 구석에서 대화에 깊이 빠져든 이들을 본다. 미소는 떠나질 않고 말은 끝없이 이어진다. 가끔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너의 말은 나의 말이 되고, 나의 말은 너의 말이 된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같은 시공간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때 그들만의 시공간이 생성된다. 물리적으로는 탁 터진 공간이지만 대화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고, 스마트폰이 가리키는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여행하는 것이다.

代話를 집어던지고
對話를 넘어
大話가 되어버린 사람들.
아름답고 신비하다.

<닥터 후>의 대사 한 토막이 기억난다.

“We’re all stories, in the end. Just make it a good one, eh?” (우리는 결국가서 모두 이야기로 남는 거잖아. 그러니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어?)

#지극히주관적인어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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