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랴센을 넘어서, 인풋을 넘어서

크라센의 언어학습이론은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어는 인풋이다”라는 말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 이 이론의 힘이었지요. 이것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효율적인 소통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인풋’이나 ‘습득’, ‘이해가능한 입력’등의 용어를 통해 원활한 대화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인풋이론이 한국사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언어교육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인풋’이라는 말 하나로 압축시킴으로써 영어교육에 대한 풍성하고도 깊은 논의를 막은 셈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부작용을 함께 가져왔는데 그 중 하나는 몰입교육에 대한 오해입니다.

‘어딘가에 푹 빠진다’는 의미를 지닌 몰입(immersion)교육은 1960년대 캐나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어와 불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사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던 곳이었죠. 그러기에 캐나다에서의 몰입교육과 한국의 몰입교육은 그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사회문화적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면 후자는 인풋의 획기적 증대를 염두에 둔 것이었습니다. 균형잡힌 교과 학습을 통한 아동의 지적 정의적 발달보다는 언어입력의 양을 늘리는 데 온 힘을 쓰고 있는 경향을 보이는 것입니다.

한때 많은 몰입교육 프로그램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였습니다. ‘본토 네이티브의 인풋’을 풍부하게 제공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한국의 유치원에서 미국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인지적, 정서적 수준이 맞지 않는 내용을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어로 유치원 과정을 배워야 할 아이들에게 외국어로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가르친 꼴이니까요.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가 개정되면 한국의 몰입교육 교사들이 엄청나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사실 영어로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교육과정을 거쳐 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어로 여러 과목을 잘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외국어로 여러 과목들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당연하지요. 한 교사는 제게 “언어과목은 그나마 괜찮지만 수학, 과학 등의 과목들을 영어로 가르치면 애들은 그야말로 ‘죽으려고 해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인풋이 모든 것이라는 믿음은 영어교육과 관련된 논의를 앙상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인적 성장과 외국어교육, 한국어와 영어 리터러시의 균형적 발달,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의 영어의 역할 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개하기 보다는 ‘어떻게 언어노출을 늘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어려서부터 최대한의 인풋을 ‘넣어주어야만’ 네이티브와 비슷한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마케팅 담론이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인풋”과 “네이티브되기”라는 두 축이 다양한 논의를 삼켜버린 시대. ‘삶을 위한 영어공부’가 아니라 ‘입력의 최대화를 위한 영어훈련’이 화두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계속)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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