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링궐: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자라는 신화

여러분은 ‘바이링궐’을 어떤 의미로 쓰시나요?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태어나서부터 혹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 언어에 노출되어 두 개의 언어를 막힘없이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더군요. 예를 들어 세 살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 미국에서 15년 쯤 살아서 영어와 한국말 둘 다 유창한 친척 동생은 바이링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면 A씨는 어떤가요? 그는 대학교까지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말할 때 ‘찐한’ 한국 발음이 나오지만 어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회사 업무 대부분을 영어로 처리합니다. 회사 들어간 지 십여 년이 지나니 자기 분야의 비즈니스를 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고, 영어로 프리젠테이션 하거나 협상을 하는 데도 큰 두려움은 없죠. 한 마디로 영어로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사람입니다.

B씨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해외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마치긴 했지만 일상적인 토론이나 술자리 잡담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원어민 친구들이 영어로 유머를 구사하면 당황하기 일쑤고요. (덕분에 타이밍 맞추어 이해한 척 웃는 기술은 수준급입니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 관해서 읽고 쓰는 능력, 즉 전공과 관련된 리터러시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말이 막힘없이 터져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공과목은 영어로 강의를 해도 할 수 있을만한 실력을 갖췄습니다. 풍부한 내용지식이 제한적인 영어 실력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이링궐’은 언어학자들이 흔히 “균형잡힌 이중언어 구사자(balanced bilingual)”라고 부르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두 언어 모두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으며, 한쪽 언어가 다른 언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아 고른 실력을 갖춘 경우입니다. 이렇게 균형잡힌 바이링궐로 발달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조건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아이와 각각의 언어로 소통하는 경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균형잡힌 바이링궐들도 모든 상황에서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국어-영어 바이링궐의 경우 초중고교 교육을 대부분 영어로 받았습니다. 학교교육을 영어로 받았으니 공부와 관련된 어휘는 거의 영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학, 과학, 지리 등의 주제를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100%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쉽다고 합니다. 아니, 한국어로 시키면 더듬거리기 일쑤죠. 그런데 이 경우엔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로 쓰기 과제를 제출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영어로 쓰라면 그럭저럭 괜찮을텐데 한국어로는 힘겨운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언어로 일상적인 소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고 해도 지식의 영역, 의사소통의 상황에 따라 대부분 한쪽 언어가 훨씬 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모든 지식에 대해 두 언어로 자유자재로 논할 수 있거나, 두 언어의 코미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바이링궐의 수는 극소수입니다. 일상적 대화와 교과내용을 두 언어 모두로 알고 있고, 쓰기에 있어서도 두 언어 모두가 편하다면 실로 놀라운 경지인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영어를 사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과업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은 바이링궐이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예를 든 A씨와 B씨는 ‘그냥 영어를 좀 잘 하는 거지 바이링궐은 아닌’ 사람들인 것입니다. 분명 비즈니스와 전공분야의 영어능력은 흔히 말하는 ‘바이링궐’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데도 말입니다.

재미난 것은 오랜 외국 체류로 한국어와 영어 모두를 편하게 구사하지만 한국어 발음이 서툰 사람들을 ‘바이링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영어 발음의 아우라가 강해서 한국어 발음의 어색함을 압도하는 것일까요? 그런 기준을 반대로 적용한다면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되 영어 발음이 조금 ‘서툰’ 사람들도 분명 바이링궐인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언어능력을 판단함에 있어 영어에 ‘가산점’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많은 이들이 바이링궐을 ‘모든 영역에서 두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올마이티 바이링궐 오류(almighty bilingual fallacy)’라고 부릅니다. 그야말로 두 언어로 모든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오류입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또 경험적으로 확실한 것은 두 언어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바이링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에서 ‘올마이티 잉글리시 바이링궐’의 탄생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입니다. 해외체류가 정답도 아니지요.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한 이주(migration)에는 떠남의 상처, 현지 적응의 어려움, 언어정체성의 혼란, 사회문화적 토양의 급격한 변화, 사회성 발달의 위기, 귀국 후 정착에서의 어려움 등이 반드시 수반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한국사회에서 바이링궐의 개념이 좀더 기능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두 언어의 세례를 골고루 받은 이들만이 이중언어구사자는 아닙니다. 언어를 충실히 공부해서 자신의 영역에서 특정외국어로 다양한 일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다면 바이링궐이라 불러도 무방한 것입니다. 좀더 많은 분들이 ‘나 영어 못하는데’가 아니라 ‘영어로 이 정도 일하면 됐지 뭘 더 바래’라고 말하게 되길 바랍니다. 존재하지 않는 바이링궐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지금 이땅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들의 다언어 능력이 대우받았으면 합니다. 완벽한 바이링궐의 신화를 걷어내고 많은 이들이 ‘다언어 사용자(multilingual)’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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