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티브 스피커는 죽었다(The Native Speaker is Dead!)

 

원어민이 죽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세상곳곳에 버젓이 살아있는데 말이죠. 사실 이것은 Thomas M. Paikeday가 쓴 책 제목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개념화했다는 겁니다. 마치 유니콘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입니다.

영어 원어민(English native speaker)는 누구입니까?

“하, 이사람 보게나. 원어민이 누구겠어. CNN 같은 방송에 나와서 아주 “명쾌한” 발음으로 뉴스를 전해주는 그 앵커들 아니겠어? 영어 교재에 나오는 그 발음 있잖아. 토플이나 토익 보면 문제 읽어주는 사람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교육을 잘 받은 미국 중산층 백인 엘리트를 영어 원어민으로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이른바 “원어민 발음”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몇 퍼센트가 될까요? 한국 영어교육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인 미국 인구 중에서는 또 얼마나 될까요?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물렀던 펜실베니아 주 내에서도 “피츠버그 발음”과 “필라델피아 발음”을 구분해서 이야기합니다. 경제와 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뉴욕 내에도 여러 가지 영어가 섞여 있고, 브루클린 지역의 발음은 여러 면에서 특히 독특합니다. 소위 “시골 동네”인 와이오밍과 앨러배마주의 발음은 ‘보통’ 발음에서 거리가 더 멀죠. 유튜브에서 이들 지역의 방언을 검색하시면 그간 들어왔던 미국영어와는 확연히 다른 발음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 내에서도 발음의 차이는 현격합니다. 물론 미국이 이민자들의 국가인 만큼 다양한 인종, 문화, 국가를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발음을 구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국 교육과정의 근간을 이루는 미국영어를 벗어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미국인 외의 수많은 사람들은 영어 원어민 화자가 아닌가요? 영국인이나 호주인들은 어떨까요? 태어나서 줄곧 영어를 쓴 인도인들은 또 어떻습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영어의 네이티브 스피커입니다. 교재의 MP3에 등장하는 사람들만 원어민은 아닌 것입니다.

일부 원어민들의 영어를 모델로 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어를 가르치고 배우려면 어느 정도의 표준이 필요하고, 적절한 모델을 따라서 노력하는 자세 또한 필수적입니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탠다드’와 다른 영어 발음과 문법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함으로써 다양성이 아닌 배제의 논리로, 평등이 아닌 위계의 논리로 발음을 대하는 건 은밀한 언어차별의 논리에 휘둘리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계열이 쓰는 영어, Texas와 같은 남부 지방 사람들이 쓰는 영어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까? 은연중에 ‘저거 발음이 영 시원찮은데…”라고 생각하거나 “정말 웃기군”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일랜드에 가면 아일랜드 사람들의 영어를 들을 수 있고, 홍콩 사람들은 홍콩의 영어를 합니다. 미국 동부 사람들은 그 지방의 특색을 가진 영어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들 사이의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 사이에 우열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주입되어 온 언어 이데올로기의 힘입니다. 우리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말이 경상도나 전라도말보다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회경제적 구조가 서울말을 하는 사람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주고 각종 미디어가 서울말을 기준으로 방송을 제작하는 경향이 있기에 ‘서울말이 낫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영어를 합니다.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발음이라면 한국 억양이 조금 들어간다거나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태교를 해서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갖게 해주겠다는 일부 극성 부모들의 행위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잃어버린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토양과 언어를 분리할 수 있다는 만용인 것입니다.

“원어민”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만, Paikeday의 말대로 ‘죽은’ 개념일 때가 많습니다. 우선 실제로 누가 원어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비현실적이고 애매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원어민’ 개념이 사회적으로 힘을 가질 때, 나아가 ‘원어민’과 ‘비원어민’이 명확히 구분되는 상황이 만들어질 때 힘을 갖고 이득을 보게 되는 집단이 존재합니다. 이는 영어 교수학습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정확성과 형식은 과도히 강조하는 반면, 언어학습이 더 깊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는 의미와 소통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원어민’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글로벌 시대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원어민-비원어민 간의 대화보다 비원어민-비원어민 사이의 대화가 더 빈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국제어(international language)로 배운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우리는 원어민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이 점을 기억한다면 필요없는 원어민 콤플렉스나 다양한 발음 및 언어특성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죽은’ 네이티브 스피커의 영어를 흉내내기 보다는 ‘살아있는’ 우리의 언어를 만들어 갈 때입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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