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위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영어를 위하여

언어는 의미를 만들고 생각을 교환하며 경험을 새기는 도구입니다. 감정을 표현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행동을 공유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모국어이건 외국어이건 언어의 본령은 나와 너를,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영어의 역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언어는 밥벌이의 수단이기도 하고, 사람을 통제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사회적 지위와 교육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index)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일정수준으로 영어를 해야만 취업할 수 있다는 규칙을 제시합니다. 영어가 ‘문지기’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은 ‘세련된’ 느낌을 풍깁니다. ‘네이티브 발음’을 가진 사람들은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지요. 영어가 의사표현의 수단을 넘어 노동을 통제하는 수단이면서 상징적인 자본으로 우리사회에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아가 영어는 여러 종류의 사교육, 테스팅 및 어학연수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사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영어교육이 이 정도로 큰 시장은 아니었습니다. 시장확대가 주춤하다고는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영어사교육 섹터는 놀랍도록 팽창했습니다. 각종 영어학원, 회화 프로그램, 어학 관련 스마트폰 앱 등에 대한 광고를 끊임없이 접하게 되었지요. 이같은 언어의 상품화(commodification of language) 경향은 지식노동이 일반화되고, 물자가 더 빨리 유통되며, 이주와 관광이 늘어나고, 다국적 기업들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언어의 상품화는 금융자본과 서비스 경제의 영향력이 커지고 지식 생태계가 급속히 변화하는 후기 자본주의(late capitalism) 시대의 징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뉴미디어가 확산되고 재화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영어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확보되었습니다. 이제 ‘영어자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영어를 배우지 못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되었죠. 클릭 몇 번이면 세계 유수의 영어 언론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이니 뉴스위크나 타임을 구독하라고 귀찮게 구는 외판원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요. 언제 어디에서나 거의 무한대의 영어자료에 접속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언어 특히 외국어는 누구나 열심히 하면 습득할 수 있는 도구라는 생각, 영어를 못하는 건 ‘네 잘못’이라는 생각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지요. 위에서 설명드린 입사를 위한 스펙이나 승진 요건의 역할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것입니다. 영어를 사회문화적 계층을 파악하거나 타인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경향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과도한 힘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보통 역사지식이나 100미터 달리기 기록으로 누군가의 배경을 순식간에 판단하지 않습니다. 지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다지 큰 관심을 주진 않죠. 심지어 국어 실력도 그다지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영어발음을 듣는 순간 그에 대해 꽤나 많은 것을 ‘알아버리게’ 됩니다. 상대에 대한 은밀한 선입견을 갖게 되기도 하지요.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봅시다. “걔 우리말 정말 잘해”와 “걔 영어 정말 잘해” 중 어느 표현을 더 자주 쓰고 또 접하시나요? 왜 우리는 “걔 완전 네이티브야”라는 말에 모종의 아우라를 덮어 씌우고 있는 걸까요?

뼈아픈 것은 영어에 대한 태도가 외부로만 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영어실력으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판단해 버립니다. “영어도 안되는데…”라며 체념어린 이야기를 하기도 하죠. 현재 한국사회가 영어를 강조하는 만큼 우리 안에서 영어에 대한 갈망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영어의 힘은 사회적임과 동시에 심리적입니다.

이 사회에서 영어는 사회문화적 계층과 특권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영어가 삶을 풍성하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척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교육을 오랜 시간 공부하고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저 자신 또한 이 사태의 희생자이자 방조자라는 생각으로 괴롭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영어의 ‘덫’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소망 뒤에는 이런 괴로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영어가 아니라 가르고 줄세우는 영어, 철저히 물건이 되어버린 영어의 시대. 한국사회에서, 또 우리 안에서 영어가 휘두르는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영어를 위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영어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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