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봄’, ‘국가에 대한 예의’, 그리고 ‘강기훈 말고 강기타’

Posted by on Nov 13, 2018 in 단상, 일상 | No Comments

감히 과거가 품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역사라는 틀에 가둬두려 해도 자꾸만 뛰쳐나옵니다. 꾸짖고 흔들고 소리치고 울부짖습니다. 속삭임마저 폐부를 찌르는 공기의 파장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과거가, 역사가 가둘 수 없는 이들은 지금 이 시대 또 다른 얼굴로 우리와 마주합니다.

저에겐 그 중 한 사람이 강기훈입니다.
오늘 네 번째 본 <1991, 봄>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가공할 권력을 지닌 국가기관이 한 개인에게 조직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습다. 그의 인생 뿐 아니라 주변까지 철저히 파괴하였습다. ‘재판’ 혹은 ‘법적 다툼’이라는 프레임으로 사건을 묻어버리려 했습니다. 여전히 국가는 진심어린 사과도 반성도 없이 ‘법원의 판단 존중’이나 ‘항소 포기’ 따위의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국가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

야만의 시간을 견뎌낸 한 사람이 수줍게 웅크립니다. 슬며시 기타를 듭니다. 숨을 고릅니다.

강기훈의 <카바티나>를 배경으로 먼저 떠나간 이들의 말이 흐릅니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맞서다 자신을 던진 이들의 얼굴들과 만납니다. 그의 연주는 과거를 묻어버리려는 몸부림도,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제스처도 아닙니다.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말로는 턱없이 모자란 참혹한 여정을 지나왔음에도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아름다움 안에 머물 수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시대의 한복판에서 바흐의 음악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아마추어 기타리스트. 기자회견을 하다가 안경을 벗고 얼굴을 책상에 묻어버린 수배자. 수많은 친구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청년. 지나치는 사람들의 그림자에마저 자리를 내주는 사람.

그의 삶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기타는 고요히 웁니다. 관객들도 따라서 숨죽여 웁니다. 이해할 수 없어, 가 닿을 길 없어 꺼이꺼이 울 수밖에 없는 삶이, 죽음이 있습니다. 강기훈씨의 연주가 뒤로 숨는 동안 사라진 이들이 하나 둘 걸어나와 살아남은 이들과 만납니다.

김철수는 말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생각해 주세요.”

김귀정은 묻습니다. “나는 10년 후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박창수는 꾸짖습니다. “왜 당신들은 아직도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하는 건가요?”

권력에 모든 것을 걸었던 이들은 삶을, 목숨을 짓밟았습니다. 대법원 무죄판결 이후에도 여전히 강기훈의 유죄를 확신한다는 이들은 처세를 이해하고 자신을 높이는 데 성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삶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강기훈이 말하는 ‘시시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누군가의 배경이 되는 일의 아름다움을 알 턱 없는 사람들이 응원을 받고, 권력을 잡고,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야만의 시간은 계속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세 개입니다. <1991, 봄>으로 개봉했지만 그 전에는 <국가에 대한 예의>였습니다. 앞서서는 <강기훈 말고 강기타>였죠. 저는 이 세 제목이 우리가 한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건은 ‘시대’로 기억됩니다. 1980년 5월. 1987년 6월. 1991년 5월. 이렇게 말입니다. 어떤 사건은 ‘상대’로 기억됩니다. ‘국가폭력사건’, ‘간첩조작사건’. 하지만 어떤 사건은 이름을 불러냅니다. 김귀정, 강경대, 박창수, 김철수, 김기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저에게 1991년 봄의 기억은 단순합니다. 대입 모의고사를 치고 학과를 결정하고 열심히 암기과목을 정리하던 시기. 아버지가 가져온 신문에서 검은 신부복 차림의 박홍을 봤던 시기. ‘국가폭력’, ‘유서대필조작’ 등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기. 김기설, 강기훈의 이름은 알지도 못했던 때입니다.

지금 돌아보면 주어진 삶에 충실했기에 더더욱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아니 죽음에 무지했던 일상이 자꾸만 아픈 시절입니다.

이런 어리석음 때문일까요.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지만 제게 남은 것은 <1991, 봄>이나 <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강기훈의 모습이었습니다. 수술 후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운지가 잘 되지 않던, 딸과 따스한 농담조의 메시지를 주고받던, 예상치 않았던 카메라를 웃으며 나무라던, 도레미파솔라시도 첼로를 연주하던, 등에 딱 붙는 백팩을 메고 진실의 힘 계단을 오르던, ‘유서대필의 누명을 썼던 손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하던’ 모습 말입니다.

“동료의 유서를
대신 써준 운동권,
국가 폭력 피해자
말기 암 환자

그러나 강기훈은
그를 가리키는
모든 말로부터
걸어나갔다”

국가폭력의 희생자 강기훈이 아닌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나간 강기타를 기억하려 합니다. 기타에 닿는 그의 눈과 손가락을, 몸짓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언젠가 저도 주어진 말로부터 걸어나갈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카바티나>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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