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광고 유감

Posted by on Nov 14, 2018 in 삶을위한영어공부, 영어, 집필 | No Comments

언젠가 “당신의 영어는 안녕하십니까?”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안녕한 영어’가 있다면 ‘안녕하지 못한 영어’가 있을 것입니다. 한 언어가 안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질문은 이어 나오는 “진짜 네이티브처럼 영어하고 싶은 당신”과 “원어민들만 알아듣는 슬랭(slang)”이라는 문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어민처럼 이야기하지 못하고 원어민이 못알아듣는 영어는 ‘안녕하지 못한 영어’가 되는 것입니다.

David Crystal의 추정에 의하면 영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약 4억 명,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약 4억명, 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약 6-7억 명 정도입니다. 즉, 모국어가 아닌데 영어로 소통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 어림잡아 10-11억 명이라는 말입니다. 이에 따르면 “원어민만 알아듣는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속어라면 더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네이티브”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제 말은 네이티브와 같지 않습니다. 네이티브만 알아듣는 표현들도 별로 알지 못할 겁니다. 그렇기에 저의 영어는 안녕하지 못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녕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런 안녕함을 묻는 거라면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입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광고 문구는 “영어가 안나와, 너무 미안한데…”입니다. 물론 영어가 안나와 미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미안할’ 필요는 없지요. 도리어 미안함이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사회가 개개인에게 심히 미안해 해야만 합니다. 기타를 못친다고 미안해 하거나 상냥한 미소를 짓지 못한다고 미안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소수자의 언어를, 이주노동자의 언어를, 다문화 아동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 미안하지 않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에는 너무나 미안한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정말 미안해야 하는 건 따로 있을지 모릅니다. 너무 미안한 영어는 영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 광고는 우리의 불안을 파고듭니다. 열등감을 자극합니다. 비교와 경쟁을 부추깁니다. 무엇보다 속도를 강조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전략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과 초조함 위에서는 결코 견실한 공부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몇 주 안에 엄청난 변화를 이뤄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또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일입니다. 외국어 하나를 깊이 익히는 것이 우리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를 생각해 본다면 영어를 너무 쉽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여정이 길어 보인다고 한탄만 해서도 안됩니다. 수많은 광고처럼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공부는 없습니다.

광고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종착점만을 바라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나’, ‘영어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나’, ‘영어로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하는 나’만을 그려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혀끝에 올리고, 썼던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과정을 건너뛰려는 얄팍한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영어공부의 과정이 꼭 고통스럽지만은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공부 속에서 반짝이는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뿌듯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의 본령은 언제나 과정에 있습니다. 외국어 공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광고에 흔들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조바심 내고 초조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루하루의 공부 속에서 소박하지만 단단한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일. 공부에는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언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삶을위한영어공부

#초안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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