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학습을 위한 원칙 (3):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스마트폰의 텍스트 추천 기능을 써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한 단어를 쓰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하고, 또 다시 단어를 입력하면 그 다음 단어를 추천합니다. 쓰는 이의 의도에 딱 맞을 때도 있지만 우스운 단어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이 기능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글이든 단어 하나 하나가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글쓰기는 결국 단어를 고르고 다음 단어를 고르는 일의 연속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글을 ‘써내려’ 갑니다. 한국어와 영어의 경우 왼 편에서 시작해서 오른 편으로 단어를 늘어놓게 됩니다. 물론 줄넘김을 하면 다시 왼쪽에서 시작되지만 기본적으로 글은 가로축을 따라 진행됩니다. 저는 이것을 ‘가로쓰기’라고 부릅니다.

흔히 자유쓰기(free writing)를 할 때 우리는 가로쓰기에 집중합니다. 논리적 흐름이나 문법, 어휘를 곰곰히 따지지 않고 빠르게 써내려가는 자유쓰기를 통해 우리는 안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끄집어 냅니다. 이 과정에서 편집과 수정은 최대한 자제됩니다. 어떤 사람은 효율적인 자유쓰기를 위해 아예 스크린을 꺼버린다고 하더군요.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쏟아놓기 위해서는 키보드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자유쓰기는 글쓰기에 대한 과도한 긴장이나 우려를 줄이고 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로서 영어를 공부하고 영작문을 공부함에 있어서 자유쓰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로쓰기’와 ‘좁게쓰기’가 별도로 필요한 것입니다. 각각에 대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세로쓰기’ 능력의 배양이 필요합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세로쓰기’ 능력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시한 휴대폰 텍스트 자동완성 기능을 생각해 봅시다. 한국어로 쓸 때는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기에 자동완성 기능은 대부분 ‘빠른 타이핑’을 돕는 역할에 그칩니다. 하지만 영어로 글쓰기에서는 사정이 좀 복잡해집니다. 무슨 단어를 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해당 자리에 어떤 단어가 가장 적합한지 고민하고 때로는 검색을 통해 최적의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하나의 자리에 어떤 단어들이 나올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세로쓰기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실제 글쓰기는 언제나 가로쓰기지만, 이 가로쓰기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은 세로쓰기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rgument(주장)라는 단어 앞에 긍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넣고자 합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생각나는 것이 달랑 ‘good argument’나 ‘bad argument’라면 계속 이 표현만을 가지고 버티게 됩니다. 하지만 good 혹은 bad 자리에 persuasive나 convincing, 혹은 compelling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최적의 형용사를 골라서 쓸 수 있게 됩니다.

세 단어의 의미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어떤 주장이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믿음을 준다는 것이죠. 하지만 강도는 조금 다릅니다. Persuasive는 말 그대로 ‘설득력이 있다’의 의미, 즉 persuade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해 convincing은 ‘확신하게 하는’이란 뜻이죠. 원동사persuade와 convince의 의미를 따져 보면 설득하는 것보다 확신시키는 게 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compel은 ‘압도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설명을 들었는데 도무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믿게 되는 상황이라면 “compelling”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셋은 비슷한 의미를 지니지만 의미의 스펙트럼을 따지자면 persuasive 보다는 convincing이, convincing 보다는 compelling이 강한 표현입니다.

원어민 화자는 이렇게 ‘골라 쓸’ 꺼리가 풍부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언어경험을 통해 쌓아온 ‘세로쓰기 레퍼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원어민은 이 레퍼토리를 의도적으로 늘려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짝궁단어’의 학습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휘학습의 원칙 편 첫 뻔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좁게쓰기’ 전략입니다.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 중 하나는 막연히 ‘영어로 글을 많이 써보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로 쓰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일기쓰기, 서평쓰기, 기사쓰기, 설명문 쓰기, 매뉴얼 쓰기 등이 존재할 뿐이죠. 물론 이들 종류의 글 또한 다양한 포맷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쓰기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쓰고자 하는 글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글을 최대한 ‘좁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종류의 글을 쓸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이 조건에 최대한 맞는 글을 찾아봅니다. 그들 중 괜찮다고 생각하는 글을 몇 편 골라 자세히 읽고 아래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해봅니다.

1. 글을 이루고 있는 정보
2. 정보들이 나열되는 전형적인 순서
3. 몇 편의 글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어와 동사 패턴
4. 유용한 어휘 및 짝궁단어
5. 유용한 문법 패턴
6. 기타 눈에 띄는 수사적 특징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책 소개’를 써야 한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여러 책 소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학술서 리뷰라면 관련 학술지를 검색하셔야 할 것이고, 대중적인 책 소개라면 신문이나 잡지를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형식을 갖추지 않는 책 소개라면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를 방문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제 샘플을 몇 개 모아서 위와 같은 기준으로 분석을 합니다.

이 과정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분석하며 텍스트를 읽다 보면 ‘책 소개’라는 글의 종류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아 이런 정보를 넣으면 되겠구나’, ‘이런 표현 신선하네’, ‘어? 이 메타포 괜찮은걸?’, ‘이 구문 조금 변형해서 쓰면 되겠다’, ‘시작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끝날 때는 이런 기법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쓰기에 대한 감 또한 잡게 됩니다.

이제 책에 대한 아이디어와 감상을 영어로 풀 수 있는 레퍼토리가 생겼습니다. 여전히 글쓰기가 쉽진 않지만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요.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읽기과정을 거치지 않고 ‘무작정’ 쓰려고 할 때 발생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어 글쓰기를 공부할 때는 자유롭게 써내려가는 ‘가로쓰기’와, 특정 자리에 올 수 있는 단어를 꾸준히 살피며 레퍼토리를 늘려가는 ‘세로쓰기’, 글의 종류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정하고 텍스트 분석을 통해 글의 길을 잡아가는 ‘좁게쓰기’가 필요합니다.

가로쓰기X세로쓰기X좁게쓰기. 이 공식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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