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속의 사회, 사회 속의 영어: 단어 속에서 세계를 만나다

인천공항이 청소노동자들에게 “VIP가 오면 화장실에 숨어라”고 요구했던 게 불과 2010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후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는 한 국회의원은 노동3권이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는 발언을 합니다.

이들 사건들을 접하면서 ‘클린(clean)’이란 단어에 담긴 세상, 그 안에 담긴 사람을 생각해 봤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문법 교육이 언어에만 집착한 채 언어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문법을 단순히 ‘언어의 규칙’이 아닌 ‘삶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Clean의 개념적 의미

‘clean’을 형용사로 쓰면 “깨끗한”이고, 동사로 쓰면 “깨끗하게 하다”입니다. 여기에서 과거와 과거분사는 “cleaned-cleaned”로 규칙적으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기존에 우리가 어휘를 배웠던 방식입니다. 순수히 언어 내적인 기술이죠.
여기에 개념적인 내용을 조금 더할 수 있습니다. 형용사로서의 ‘clean’은 특정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대상이나 장소 등이 물리적으로 깨끗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동사로 사용되면 특정 주체의 행위를 표현합니다.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나아가 clean을 메타포로 쓸 수도 있습니다. 가령 “His record is clean. (기록이 깨끗하네. 즉, ‘전과가 없다’는 뜻)”과 같이 말입니다. 어떤가요? 이것은 언어와 개념을 연결한 해설입니다. 언어항목에 대한 단순 암기가 아니라, 그 언어가 담고 있는 개념적 내용을 다루죠.

‘Clean’의 사회적 의미: ‘깨끗하다’와 ‘청소하다’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어떤 공간이 깨끗(clean)하다는 것은 누군가가 청소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노동이 없이 스스로 깨끗한 공간은 없겠죠. 청결한 공항에는 청결함을 유지하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만약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뭔가 이상한 것이고요. 먼지가 쌓이고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는 노동 없이 깨끗한 환경 속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깨끗한’이라는 형용사는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를 전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다’라는 동사는 그런 상태로 만든 사람(주체)를 내포하므로, ‘깨끗’하다는 것은 ‘깨끗하게 하는’ 사람(청소노동자)를 품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즉, ‘clean’의 사회적 의미, 사회 속에서 깨끗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Clean’을 형용사와 동사로서 배운다는 것

이처럼 ‘clean’을 형용사와 동사로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이 두 가지의 품사적 구분을 아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깨끗한'(clean)한 세계와 이 세계를 ‘깨끗하게 하는'(to clean)하는 사람(청소노동자)을 연결해 생각할 수 있어야만 이 두 품사의 관계를 배웠다고 할 수 있지요. 형용사가 동사가 되는 것은 순수히 언어적 현상이지만, 실제 세계에서 그 변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특히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This place is so clean. (여기 정말 깨끗하다.)”라는 문장은 “Someone must have cleaned this place. (누군가가 청소를 한 게 틀림없구나.)”라고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This place is always clean. (여긴 항상 깨끗하네.)”라는 문장은 “Someone must clean this place on a regular basis. (여기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있나 봐.)” 라고 바꾸어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문법은 언어적, 개념적,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언어의 의미를 개념화하고, 그것이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갖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동태의 정치학

한 가지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수동태를 가르친다면 수동태의 형태(be+과거분사+by ~)부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수동태가 묘사하고 있는 여러 사건들에서 수동의 개념을 이끌어 내고, 그것이 어떻게 언어화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

Many immigrants are deprived of their rights. (많은 이민자들은 권리를 박탈당한다.)

The current immigration laws deprive many immigrants of their rights. (현재의 이민법은 많은 이민자들에게서 권리를 박탈한다.)

두 문장은 하나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태의 문장에서는 ‘박탈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이민자들의 현재 상태를 그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래 능동형의 문장에서는 이민자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주체가 드러납니다. 물론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현재의 이민법을 입안하고 가결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이 같은 분석을 통해 수동태라는 언어적 장치가 인간이 경험적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을 살펴보고, 능동태나 수동태를 선택하는 일이 절대 중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 즉, ‘수동태의 정치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요는 언어적 설명을 넘어 개념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문법현상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쉬는지, 때로는 세계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개별 문법 요소들을 살피면서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문법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가끔 “If I were a bird… (내가 새라면)”나 “If I were a millionaire… (내가 백만장자는)” 보다는 “If I were a Pakistani immigrant worker in South Korea … (내가 한국의 파키스탄 이주자라면)”나 “If I were a Muslim refugee in the US (내가 미국의 무슬림 난민이라면)”가 예문으로 나오는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과 문법을 엮어내는 공부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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